인생을 시계처럼 정직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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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시계처럼 정직하게 살아라
  • 황동준
  • 승인 2019.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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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예지동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계 장인들이 모여 있는 시계골목이 있다. 그곳에서 영신사를 운영하는 박종현(74) 장인은 16살 때부터 지금까지 59년째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전쟁을 겪고, 한국경제와 함께 성장한 그는 현재 시계골목에서 장인으로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힘겹게 지나온 삶을 통해 진심 어린 교훈을 건네는 그를 만나봤다.

 

 

 

선택지가 없었던 시계수리기술자의 길

 

시계수리를 배우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그때는 선택지가 없었어라고 대답했다. 장인이 5살이었을 때 6·25전쟁 발발로 인해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워야만 했다고. 장인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들 어려우니까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고, 그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했지.” 다행히 지인 중에 서울에서 일하는 시계수리기술자가 있어 그는 망설임 없이 충남 아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16살 무렵부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대신 5년 동안은 무급으로 일해야만 했지.”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5년의 시간에 대해 그는 정말 지옥 같았어. 다행히 숙식은 제공됐지만,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고 휴일도 없이 미친 듯이 일했지. 나에게는 부모도 없고 기댈 곳도 없으니 버티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라고 회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5년간 2평 남짓한 방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해야 했다고. 기독교 신자인 장인은 이 비참했던 시절을 오직 신앙으로 이겨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내 능력이 좋다거나 참을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신께서 날 도와주셨기 때문이야.” 그는 신앙뿐 아니라 겸손한 마음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후 그는 3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뒤, 기술력을 인정받아 다른 곳에 취직한다. 기술을 배운 지 8년만의 첫 월급이었다. 시계수리기술자로 살게 된 것에 대해 후회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 보니까, 후회할 겨를이 없었어. 나를 먹여 살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선택지는 오직 기술 배우는 것 하나였고 이것만 보고 달려왔다네. 다행히 내 실력이 좋더라고. 돌아보면 후회보다는 감사가 더 많지.”라고 말했다.

 

 

 

기술자로서의 신념

 

박종현 장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직이다. 올바른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고. “기술자는 정직해야 해. 수리하다가 자신이 고장 낸 것을 손님에게 감추는 기술자들이 참 많아. 하지만 정직한 기술자는 그러면 안 돼.” 그는 자신이 맡은 시계 중 상당수가 이전 수리에서 고장 났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장인에게도 수리하다가 실수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실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기술자 밑에서 배웠어. 5년 동안 무보수로 일할 때 시계를 수리하다가 고장이 나면 내가 다 물어내게 했지. 나는 보상할 돈이 없었으니 절대 실수를 안 했어.” 하지만 60대 때 그는 수리를 맡은 시계를 고장 낸다. 다행히 이틀 만에 복구해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계수리 50년 만의 첫 실수였다. 장인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결국 돈을 안 받았다고.

 

정직한 기술자로 살면서 가장 뿌듯한 것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기술자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은 많이 못 벌어. 하지만 정직하게 노력한 만큼은 벌 수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해.” 장인은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만큼 내일도 그럴 수 있음에 만족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덧붙여 40년 가까이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린 것도 가장 뿌듯하다고. “비록 유복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자식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야. 나는 내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만 했잖아.” 장인의 미소는 직업과 가정에서 성공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었다. 끝으로 그는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정직하게 살면서 후회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전했다.

 

 

인생의 반세기를 함께 한 시계

 

지금까지 59년째 시계와 함께해온 장인에게 시계의 의미를 묻자 시계는 정해진 대로 정직하게 가는 것이 마치 인생과 같아. 제 부품이 안 들어가서 시간이 멈추면 시계가 죽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지라고 답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부품은 신앙, 기술자로서의 신념, 가정이다. 이 세 가지 부품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장인의 인생을 생기 있게 흘러가게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싶어. 눈은 안 좋아져도 기스미(눈에 부착하는 시계 수리용 렌즈)가 있으니 버틸 수 있겠지만, 손이 떨리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그만해야겠지. 그러니 오늘 하루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신께서 나에게 힘을 주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어라고 답했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최고의 장인이 된 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거든.” 장인은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기회가 많다며, 청년들이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족, 친구와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는 잠깐 사업을 했다가 모르는 분야다 보니 실패했거든. 그러니 괜히 잘 모르는 분야에 도전했다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청년들이 자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진로를 결정해 좌우 보지 말고 미친 듯이 달려가라고 말해주고 싶어.” 생계를 위해 시계를 잡기 시작했고, 결혼하고서는 가정을 위해 시계를 수리한 장인. “나는 젊은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마쳤다. 장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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