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없는 추모식이 돼버린 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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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없는 추모식이 돼버린 현충일
  • 황동준
  • 승인 2019.06.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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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좌), 현충원 외부 시위단체(우)

 

매년 66일로 지정된 현충일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고려 현종 5(1014) 6,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한 전통과 6·25전쟁을 고려해 이날로 정해졌다. 현재 현충원에 묻힐 수 있는 이들은 국군장병들만이 아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투사, 민주투사, 호국영령 등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현충원 안장 대상자로 지정했다.

기자는 지난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현충원 입구 주위는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각 지방에서 온 학생들, 국가유공자 유가족, 군인들 그리고 상인들과 포교하는 종교단체로 인해 매우 번잡했다. 이날 현충원에는 추념식을 위해 약 1만여 명이 참석해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인파가 몰렸다.

추념식이 시작되자 사이렌 소리와 함께 현충원 내 모든 이들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1분간 묵념을 진행했다. 이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애국은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라 역설했다. 하지만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의열단에서 활동한 약산 김원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 큰 논란이 일었다.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면서 강화된 군사적 역량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후 논평을 통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순국선열 추모 행사에서 언급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국군의 기초가 된 광복군에 조선의용대가 편입된 사실을 말한 것뿐, 조선의용대가 국군의 뿌리라고 하는 것은 비약이라며 야당의 논평을 반박했다. 이뿐 아니라 김원봉의 서훈 추서 문제 또한 붉어져, 결국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현충일 추념식에 정치 문제가 개입돼 추념식의 본 의미가 흐려지고 말았다.

한편 추념식 자체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듯 몇몇 학생들이 자리에서 나와 그늘에서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중학생에게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묻자 잘 모르겠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단체로 왔지만 (추념식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어요. 얼른 끝나고 놀러 가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하거나 졸고 있었다. 대부분 학생들에게 현충일 추념식은 그저 불편하고 지루한 자리였다. 실제로 작년 언론사 프레시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중고등학생들은 현충일의 개념을 정확히 모르며 현충일을 그저 휴일로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증명하듯 많은 학생들은 모든 식순이 끝나자 바로 현충원을 빠져나갔다.

현충원 밖으로 나서자 길 건너편에서 시위가 진행 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과 그간의 행보를 규탄하는 시위였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이들의 소리는 현충탑 근처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도중에도 방해가 될 만큼 소리가 커 참석한 시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충원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현충원 주위는 정숙 하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며 이는 도로 표지판에조차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시위단체는 호국영령을 기리는 마음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일제 치하 35년간 목숨을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 되찾은 나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국군장병,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투쟁한 민주투사들. 현충일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임에도 이들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정치인들은 현충원에 정치적 문제를 가져와 의미를 흐렸고, 학생들은 그 의미조차 잘 알지 못했으며, 현충원 외부의 정숙은 깨진 지 오래였다. 이제는 이러한 갈등의 담론을 벗어나 현충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고 지키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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