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여유로운 삶 속에서의 작은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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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여유로운 삶 속에서의 작은 주연
  • 황동준
  • 승인 2019.09.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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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로열패밀리이한영 | 시대정신 | 1만 2,000원
김정일 로열패밀리이한영 | 시대정신 | 1만 2,000원

 

“여기서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적당히 여유로운 삶 속에서 나는 작은 주연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무수한 주연들이 살아가는 사회,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북한은 하나의 거대한 우상(주연)을 위한 단역들의 집단이다.”

저자 이한영(본명 리일남)은 김정일의 처조카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다. ‘우연한 망명’ 이후 남한에서 전전긍긍하던 이한영은 생활고로 인해 김정일의 비밀을 담은 수기를 작성한다. 하지만 김정일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책을 낸 지 약 8개월 후 북한 공작원에 의해 암살당한다. 이는 영화 <의형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의 조카인 리일남은 그녀 덕분에 백두혈통이 아님에도 왕족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다 모스크바 유학 중 몰래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를 여행하는데 자신이 배워온 것과 다른 자본주의의 실상에 놀라게 된다. 점차 자본주의에 매혹된 그는 반동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하고, 이는 스위스 유학 중 미국으로 여행가기 위해 남조선 대사관에 전화하는 무모한 행동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원래 목표와 달리 남한에 먼저 가자는 말에 설득돼, 82년 그의 ‘우연한 망명’이 이뤄진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이한영으로 개명한 뒤 성형수술까지 해야 했고, 가족과 연락할 수도 없었다. 사업도 시도해보지만, 억울한 옥살이로 인해 가정은 파산 직전에 이른다. 다행히 무죄로 석방되고, 돈을 위해 14년 만에 어머니 성혜랑에게 연락을 취한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성혜랑은 한마디 질책 없이 도와준다. 이후 성혜랑 가족은 망명을 시도하지만 잘못된 보도로 인해 실패하고, 이 과정에서 이한영의 존재는 세상에 공개된다. 그리고 그는 ‘계신 곳을 알면 총살같이 달려가겠습니다’라며 수기를 마무리한다.


수기에서의 이한영은 철없고 뻔뻔한 사람처럼 보인다. 가족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미국 여행을 시도하는 무모함과 망명 후에도 계급의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불건전 유흥업소를 쉽게 방문하는 모습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치부까지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어낸다. 부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시간을 겪으며 성숙해져 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인 동정심을 자아낸다. 아마도 철없는 나이에 환상을 좇다 현실에 부딪혀 넘어지는 모습에서 우리들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주제는 ‘반성’이다. 이한영은 ‘나는 한때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자유란 어느 정도의 절제와 질서 안에서 지켜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고 고백하며 새로운 삶을 희망한다. 그러나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수기라는 점은 결말을 더욱 비정하게 만든다. ?14년도 기다렸는데 몇 년을 더 못 기다리겠습니까?라던 그리운 희망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최고위층 삶과 남한에서의 감옥살이까지 겪어온 이한영. 그는 14년간 성장통을 겪으며, 남한에서는 작지만 삶의 주연으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그와 같이 작은 주연으로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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