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지 못해도 잘 볼 수 있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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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지 못해도 잘 볼 수 있어 다행이야
  • 이재효
  • 승인 2019.09.02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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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수화통역센터장, 청각장애인을 위한 잡지 편집장, 나사렛대 학교 수어통역학과 겸임교수, 한국청각장애여성회 대표까지 이 모든 활동을 동시에 수행 하고있는 사람이 있다. 오랜시간 활동하면서도 넘치는 열정으로 지치지 않는다는 안영회 교수를 만나봤다.

 

▲의사, 테니스, 그리고 수어
 어릴 적부터 꿈이 많았던 안 교수가 처음 가졌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세 살 때청력을 잃어버린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출판 회사 덕분에 수많은 책을 섭렵하면서 의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교수의 의사라는 꿈이 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의학 사전을 탐독하던 중 청진기를 발견한 것이다. 또한 그는 “수술대에서 의사와 간호사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고 자칫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꿈을 접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운동을 했던 것이 계기가 돼 운동선수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당시는 과외가 불법이었던 시절이기에 과외를 받을 수 없었던 안 교수는 공부보다 체육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테니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동료 간의 소통을 이해하고 감독의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당시 체벌이 당연시되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감독의 눈치를 많이 보았다고. 그는 “한 번은 감독이 한 욕설의 의미를 물어봤다가 감독님 얼굴이 새빨개진 적도 있었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운동을 했던 안 교수는 학창 시절 내내 운동만했기에 다른 학생들이 흔히 체험하는 MT, 미팅, 심지어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등의 소소한 일상의 추억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에 지쳐 그는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그후 사회로 나온 그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부모님이 다른 청각장애인들과 소통을 위해 수화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에 저는 '수화가 뭐에요?' 라고 말했죠. 그때가 27살이었어요." 수어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이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같았다고. 이후 그는 수어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잘못 됐다는것을 느끼며 청각장애인의 복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강대학교와 나사렛대학교 등에 강의를 제안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 쉼 없이 달려온 지금
 안 교수는 지난 2009년 서울시 복지상 장애 극복자 분야에서 대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에 대해 기자가 묻자 안 교수는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상을 주신 것은 더 열심히, 더 많이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어요" 라며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를 비롯해 여러 언론 매체에도 얼굴을 비치는 등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안 교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잡지인 <아름다운 손짓>의 편집장으로 있는데 그곳에 관심을 가진 PD와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후 여러 언론매체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고. 그러나 그는 사실 언론매체 출연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제가 아무래도 수화도 하고 구화도 구사할 수 있어 이슈가 된 것 같아요"라며 "사실 저는 이게 왜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손짓>을 시작한 이유도 기본적인 수화를 통해 농아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어요. 굳이 구화를 잘해야 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또한 그는 언론매체에서 다문화와 같은 문제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같은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또 다른 언어인 수어를 가진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과거 <아름다운 손짓>에서도 수화 통역사들이 부족해 편집장직을 수행하며 인터뷰, 섭외 등 일인다역을 맡느라 매우 고생했다고. 인터뷰 직전까지 회의에 참석하고 온 안 교수는 편집장과 교수 이외에도 한국청각장애여성회 대표, 서초구 수화통역센터장 등 여러 직함을 맡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제가 그래서 결혼을 못 했나 봐요”라고 농담하며 즐겁게 웃었다. 사실 그는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보람차게 일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는 끝으로 수화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는 문화복합단지를 짓는 것과 인간적인 수화 통역사를 양성하고 싶다는 자신의 목표를 전했다.

 

▲ 우리는 다르지 않아요
 기자가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해 무슨 노력을 해야하는지 묻자 안 교수는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 속에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장애인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등의 시각을 바꾸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보면서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그런 부분에서 그는 서강대학교의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장애 학생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이것은 도와줬다는 사실이 고마운 것이 아니에요. 그러한 도움이 제공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학교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거죠"라며 웃음 지었다. 또한 이렇게 제공되는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히 필요한 것으로 모두 생각하며 장애 학생의 경우에도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 교수는 더불어 수화통역을 봉사로만 바라보는 태도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화는 단지 손짓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두뇌를 사용하는 일종의 언어이기 때문에 일반 통역사의 일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그는 "수화 통역사를 지금은 하나의 봉사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수화통역 수업의 강습료도 타국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가격으로 책정돼죠"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장애를 가진 청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발전시키며 잠재된 재능과 끼를 자신 있게 발산하면 좋겠다"라며모두의 용기를 북돋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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