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인들의 사교장, 제비다방과 마리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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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인들의 사교장, 제비다방과 마리서사
  • 이승현
  • 승인 2019.09.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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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문학관에 재현된 마리서사의 모습
박인환 문학관에 재현된 마리서사의 모습

 

근대 서울 종로 거리에는 당대의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가게들이 존재했다. 바로 천재 시인 이상의 다방 제비와 세련된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의 서점 마리서사. 두 장소는 근대 문인들이 활발하게 이야기를 꽃 피웠던 토론장이자 사교장이었다.

난해하고 전위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이상은 시인으로의 전업을 결심하고 1933년 종로1가에서 연인 금홍과 함께 다방 제비를 개업한다. 당시 그는 작품을 왕성히 발표하던 문인이자 근대 문학단체 구인회의 소속이었기에 제비다방에는 자연스레 구인회 소속 문인들인 박태원, 김기림, 이태준 등이 모여들었다. 제비다방은 문인들이 문학과 예술을 논하거나 일본으로부터 받는 검열과 차별을 토로하는 아지트였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도 할 일없는 소설가 구보씨가 서울의 거리를 배회하다 제비다방을 찾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비다방이 문인들의 대표적인 모임장소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은 제비다방에서 문인들과 교류하며 창작의 혼을 불태웠고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유명한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목적인 장사는 뒷전이었던 이상은 결국 경영난으로 인해 개업 2년 만에 제비다방의 문을 닫고 만다.

당대 문인 중 최고의 멋쟁이였던 박인환도 해방 후 종로 거리에서 가게를 열었다. 그는 도시적 감성과 서구적 취향으로 무장한 사내였고, 이러한 서구 예술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바탕 삼아 1945년 말 서울 종로32번지에 서점 마리서사를 차렸다. 서점은 쉽게 구하기 힘든 서구의 예술과 문학 관련 서적을 많이 비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리서사가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 있던 당대 예술가들을 끌어들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기림, 김수영, 김광균, 정지용 등 유명 시인들뿐 아니라 화가와 영화인들도 서점을 찾았고, 마리서사는 청년 예술가들의 집결지이자 근거지로 자리매김한다. 예술가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될 새로운 문학, 예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눴다. 당시 단지 문학 지망생에 불과했던 박인환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멋쟁이 박인환도 경영의 일에는 서툴렀고 결국 그는 1948년 서점의 문을 닫는다.

이처럼 비록 제비다방과 마리서사가 종로의 거리에 위치했던 역사는 길지 않으나, 두 장소가 근대 예술가들을 꿈꿀 수 있게 해줬던 환상적인 장소임은 분명해 보인다. 마리서사와 제비다방을 그려보며 1930,40년대 문학을 향유하는 것도 또 하나의 낭만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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