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상태바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 채민진
  • 승인 2019.09.16 10:2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 수업 시간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백석. 그의 작품 특유의 향토성과 한번 들으면 뇌리에 박히는 독특한 이름으로 백석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시인이다. 그러나 사실 백석은 평안도 출신으로 남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에야 비로소 주목받게 된 시인이다. 또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일부 작품들 외 다수의 작품은 낯선 평안도 사투리와 투박한 어투로 독자들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는데 어려움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기에 아마 백석에게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시를 통독하며 전체적인 느낌을 음미해보면 백석 시를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음식에 앞서 백석의 시에는 벌레, 곤충, 가축, 야생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인은 이들을 마치 친구나 가족처럼 호명한다. 이를 단순한 감정이입이나 의인화로 볼 여지도 있으나 백석 시 전반에 등장하는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엔 부족하다. 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중에서도 음식이 되는 동물에게는 상대적으로 화자와의 동일성이 더 강하게 부여되는 측면이 있다. 이와 동시에 타자로서 갖는 차이점도 분명하다. 즉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백석은 이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아닌 대상을 친구라고 명명하는 것을 의인화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로 샤머니즘적 인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백석 시의 가장 큰 특징이 토속적 세계관임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샤머니즘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공통된 뿌리에서 파생되어 공생하는 친구 같은 관계로 여겨진다. 여기서 왜 가족 같고 친구 같은 동물을 먹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동식물을 먹는 것 자체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먹는 행위는 곧 잠재적인 생명력과 영혼이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옴을 의미한다. 즉 친척 관계인 두 육체의 신적인 연결고리와 합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렇듯 샤머니즘에서는 모든 동식물은 음식이 될 잠재적 가능성이 있기에 이들 모두 인간과 친구나 친척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인식론은 백석의 시 선우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선우는 반찬 친구라는 뜻으로 선우사에서 백석은 저녁 밥상에 놓인 흰밥가재미를 보며 그들에게 말을 건다. 백석은 자신과 흰밥 그리고 가재미의 순수하고 선한 마음씨를 병렬적으로 열거하며 유사성을 드러내는 한편 각각의 과거를 대응하며 차이점 역시 인식한다. 이로써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서로 미덥고 정답고 좋은 독립된 주체들의 관계로 인식된다. 그리고 친구란 바로 이러한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렇듯 선우사에는 샤머니즘적 인식과 같이 음식이 되는 동물은 유사성과 차이점을 포괄한 친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신영 2019-09-30 11:56:39
고등학교 문학시간이 생각나는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

김민희 2019-09-30 11:31:44
백석이 생각하는 친구의 관계라... 흥미롭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