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와 동행한 ‘루스키 미르’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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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와 동행한 ‘루스키 미르’로의 여행
  • 서승현(‘초급러시아어’강의)
  • 승인 2019.09.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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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키 미르(русский мир)'를 해석하면 '러시아 세계'이다. 러시아 정교에 기반한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 루스키(русский)는 민족으로서의 러시아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대 루시로부터 시작된 역사적인 '러시아적인 것'을, 미르(мир)는 그러한 것으로 구성된 세계, 혹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러시아적인 것', '러시아 세계'는 어떤 것일까. 러시아 여행자들은 대부분, 보다 러시아적인 것을 경험해보고자 소비에트 시기 및 현재의 수도인 모스크바와 200년간 제정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방문할 것이다. 아마 두 도시가 현재의 러시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인 요소들이 관통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새롭게 들어선 현대식 건물이나 장대한 스탈린식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화려한 황금 지붕을 자랑하는 비잔틴 양식의 정교회 사원이 많다. 반면 유럽문화를 받아들인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흡사 서유럽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줄 만큼 유럽적인 건축양식이 주를 이룬다. 서로 다른 도시 미관만큼이나 두 도시는 상반된 러시아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한편, 이 두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자연스레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작가를 도시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바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그들의 작품세계는 슬라브주의-서구주의라는 상반된 헤게모니가 교차하는 두 도시처럼 각각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지극히 러시아적이다. 지난해 겨울, 공동 연구를 목적으로 가게 된 한 달여나 되는 러시아 장기 출장 덕분에 빈 시간이 날 때마다 그들의 러시아적인 세계와 오랜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머무르는 동안 톨스토이 박물관과 그가 1882년부터 1901년까지 가족들과 거주하면서 소설 「부활」을 집필한 저택인 톨스토이집 박물관을 방문했다. 또한 박물관을 방문한 저녁 시간에는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을 현지에서 관람했다. 이후 톨스토이가 태어난 곳이며 「전쟁과 평화 Война и мир」와 같은 대작을 집필한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야스나야 폴랴나(Ясная поляна)도 방문했다. 이곳의 자연풍광과 그 시대를 살았던 러시아 귀족, 농민들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소재로 한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다. 봄이나 여름에 방문하면 이곳은 호수를 낀 광활한 벌판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준다. 이번과 같은 겨울의 방문 때는 저택 근처에 양쪽으로 늘어선 눈 덮인 회색빛 자작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 것이 묘미다. 러시아어에서 '평화' 혹은 '세계', '우주'를 뜻하는 '미르(мир)'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미르'를 전쟁과 반대되는 의미보다는 전쟁과 죽음, 그로 인한 차디찬 파멸을 경험한 인간이 성장하여 추구하고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삶의 세계'라고 보았다. 이는 나아가 러시아의 정체성 고뇌로 이어진다. 톨스토이는 타자(유럽)보다 '나의 세계(러시아)'에 더 관심을 가졌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과 대결했다고 한다면 톨스토이의 상대는 에고이즘(egoism, 이기주의)이었다. 이를 확장해 러시아의 정체성과 욕망(육체)-도덕률(정신), 민중(나로드, 농민)-귀족(지배계급)들 사이의 통일성에 대해 고민했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작가는 민중들의 어려운 삶과 프랑스 문화에 젖어 있는 지주들의 문화를 드러내면서 자아와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달리 나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소설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초기 작품에서부터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주인공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이는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러시아(나)-유럽(타자)의 구도로 확장된다. 그는 러시아라는 정체성은 유럽이라는 ?타자와의 대비? 속에서 규정된다고 보았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죄와 벌 П 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의 배경은 소외된 무기력한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의 뒷거리가 무대이다. 소설의 실제 무대가 되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센나야 광장(Сенная площадь)은 지금도 많은 상인과 노동자들로 붐비는 커다란 시장이 위치한다. 소설에서 가난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이지만 그는 비범한 자로서 죄 많은 자를 단죄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결국 죄의식의 중압에 견딜 수 없게 되고 그와는 반대로 다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창녀 소냐에게 죄를 고백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하여 동시대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그밖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역사적인 장소들이 많다. 쿠즈네츠니 52번가에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집필하고 생을 마감한 아파트를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으로 개관한 문학 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다. 내부의 그의 서재 책상 앞 창가 쪽 작은 테이블의 시계는 그가 생을 마감한 1881년 1월 28일 저녁 8시 38분에 멈춰져 있다. 거실의 담뱃갑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가 자신이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고뇌했을 당시의 모습들이 오랜 서적과 가구의 냄새와 함께 시공을 초월하여 전달되는 듯했다. 


러시아 여행에 앞서 문학작품을 통해 두 작가의 세계를 만나거나 여행 중 관련 전시, 공연 등을 관람할 기회를 가지면서 작가들과 동행한다면 보다 러시아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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