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현실 속에서 비폭력을 읊조리다
상태바
폭력적 현실 속에서 비폭력을 읊조리다
  • 박주희
  • 승인 2019.09.16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력적 현실 속에서 비폭력을 읊조리다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거야.”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이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연작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는 한 여자가 겪는 일들을 그려낸다. 『채식주의자』는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국내 최초 수상작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영혜의 수수하고 무난한 점이 마음에 들어 그와 결혼한다. 하지만 아내가 유년시절 트라우마와 꿈을 이유로 ‘채식주의’를 선언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자 그의 마음에 불만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고기를 권하고,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함에도 고기를 절대 입에 대지 않은 그는 강요가 계속되자 손목을 긋기에 이른다. 이에 남편은 혐오감에 진저리치며 그와 이혼하게 된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와 형부의 이야기로, 형부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형부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영혜를 자신이 구상한 영상물의 주인공으로 삼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식물이 되기를 소망하는 영혜와 예술적, 성적 일탈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해당 사실이 아내에게 발각돼 남편은 쫓겨나고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3부 <나무불꽃>은 영혜 언니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영혜의 언니는 계속해서 음식을 거부해 야위어가는 동생을 걱정스레 바라본다. 영혜는 나무가 뿌리를 내려 서 있듯 물구나무를 서거나, 식음을 전폐하고 햇빛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결국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영혜 언니가 영혜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이동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잔잔하면서 섬뜩한 작가의 문체와 충격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큰 여운을 안긴다. 간결하고 아름답게 구성된 이야기는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집과 가족, 사회를 묶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소설에서는 ‘육식’이 권위주의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을 비유하는 객관적 상징물로 여겨진다. 이에 주인공 영혜는 폭력과 육적인 삶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채식주의자가 되고, 식물로의 승화를 꿈꾼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모든 이야기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서술해 영혜라는 인물에게 가해지는 외적,내적 폭력과 그녀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남편의 무관심과 몰이해, 아버지가 가하는 언어적·신체적 폭력,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등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자신을 얽매는 가부장제와 육식의 관습, 폭력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려는 영혜의 주체적인 노력은 채식과 식물로의 지향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또한 소설에서 동시에 묘사되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모습과 인간 욕망의 추함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은 긴장감을 더욱 극대화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