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명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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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명이 더 있다
  • 김도연
  • 승인 2019.09.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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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적 사건이 돼버린 EBS 까칠남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성소수자 특집에 출연해 당당히 자신을 ‘T(트랜스젠더)’로 소개하던 박한희 변호사도 당시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에서 인권 침해적이고 차별적인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라는 소개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박한희 변호사의 삶과 꿈을 만나봤다. 


▲ 공학자를 꿈꾸던 이과생

 박한희 변호사의 어릴 때 꿈은 늘 과학자였다. 실험실에 가서 노는 것을 즐겼고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다. 특히 만들고 조립하는 것이 적성에 맞은 그는 로봇 공학을 배우고자 포항공대 기계공학에 진학한다. “이 분야에서 박사학위까지 따야겠다는 생각으로 입학했어요. 30살 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전까지는 학교, 군대, 회사에서 남성의 모습으로 살았었죠. 주변에 성정체성을 말한 적도 없었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어요. 그때는 학교 내에 성소수자 동아리도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진학 후 같은 과 선배, 동기, 후배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환경에서 그는 많은 불편을 겪는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그는 망설임 없이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꼽았다. “포항공대는 전교생 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는데 2인 1실로 룸메이트와 방을 쓰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화장실이나 샤워실 같은 시설도 무조건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죠.” 그래서 그는 대학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고.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혼자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찾다가 바로 건설회사에 들어가지만, 회사 내 기계팀에서 근무하다 보니 또 한 번 남성들만 모인 집단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1년 정도 하던 중 고민이 생겼다고. “언제까지 나를 감추며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됐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원인 상태에서는 커밍아웃하기 어려울 것 같았죠. 커밍아웃을 하면 회사에서 당장 해고할 수도 있는 거고, 내부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담히 전하는 그의 말투에서 그간 겪었던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커밍아웃 이후의 삶을 그리다가 그는 전문직을 택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기왕 전문직을 딸 거면 정신과 의사랑 변호사 중 하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같은 성소수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2013년 서울대 로스쿨에 들어갈 때만 해도 공익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커밍아웃이 공익변호사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냐고 묻자 박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쿨 1학년 때 딱 30살이 됐는데 ‘앞으로의 30년을 더 감추고 살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물었을 때 답이 안 보였어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밝히기로 했죠. 밝히고 난 뒤에는 취직이 고민되더라고요. 여러 분야를 찾아보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희망법’을 알게 됐어요.” 희망법에서 일하는 변호사들과 진로 고민도 나누고, 성소수자 관련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며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이후 희망법에 들어온 박 변호사는 현재 희망법 내 성소수자 팀에서 소수자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또한 박 변호사는 5년간 5회 응시라는 변호사 시험의 응시 제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응시 제한 자체가 병역 이외에는 어떤 예외도 두고 있지 않은데 이 부분이 위헌적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자유를 막을 권리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애초에 로스쿨 도입 목적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법률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건데 현재 제도 내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아요.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 위해서는 분명 변화가 필요해요”라며 시스템의 개혁을 강조했다.

 

▲ 박한희가 꿈꾸는 사회

 박 변호사는 언론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언론의 가장 잘못된 태도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로 언론이 성소수자를 불쌍하거나, 특이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되게끔 비춘다는 것이다. 그는 성소수자가 우리 옆에 있는 이웃이라는 걸 알려줘야한다며 성소수자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는 올바른 ‘공정성’과 ‘중립성’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언론이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 문제는 정치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달라야죠. 퀴어문화축제 보도를 할때 대부분의 언론에서 축제 참가자들의 입장과 동성애 반대 극우 집단의 입장을 한 면에 다루고 있어요. 누군가를 차별해야 한다는 명백한 혐오를 하나의 의견 정도로 다루는 건 옳지 않아요.” 박 변호사는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 위에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성소수자를 위해 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희망법의 변호사들은 모든 사람이 성별, 인종, 성적지향, 종교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오랜 시간을 싸우고 있다. 투쟁의 과정에서 함께 연대하는 존재에 관해 묻자 웃음을 띠며 답했다. 2017년에 재출범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127개의 시민단체가 함께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주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제게 힘이 돼요. 한국 사회는 혐오와 불평등이 단순히 특정 집단의 문제라고 환원하는데, 사실 차별과 혐오는 모두의 문제이고 함께 노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성소수자의 롤모델이 필요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박 변호사는 “꾸준히,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함게 싸우는 존재가 적어도 저기에 한 명 더 있구나’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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