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대립의 온상으로 변한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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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대립의 온상으로 변한 세운
  • 최우석
  • 승인 2019.09.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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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지구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며 서울시가 감추고 있는 슬픈 얼굴의 표상이다. 13년의 숙원이었던 재정비사업이 결국 무산되고 구세대의 장인들과 청년들의 협업을 이끌어 낸다는 정책마저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지금, 세운지구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다.   

 세상의 모든 기운이 모인다는 야심찬 의미의 ‘세운(世運)’.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지어진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공구상, 인쇄소, 컴퓨터 부품 및 가전을 비롯한 각종 전자 제품 상가 등이 밀집한 세운지구는 한때 2차 산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산업 구조가 급격히 재개편됨에 따라 사람들은 떠났고 건물은 노후화됐다. 그렇게 구시대 역사의 이면 속으로 침잠해 가던 세운지구는 새로운 바람을 맞이했다. 2006년 서울시는 건물 노후화 문제 해결, 도시 미관 제고 및 도시 부흥을 위해 세운지구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재개발 사업에 착수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사업은 잠정 중단됐다. 이어 2014년 3월 세운상가 존치 등 일부 계획을 변경해 재정비지구로 재지정하면서 재개발 사업에 다시 시동이 걸렸으나 을지면옥을 비롯한 노포(老鋪) 보존 문제로 세운 3구역의 개발에 제동이 걸렸고, 무분별한 난개발이 아닌 도시 보존, 재생으로 사업의 방향을 돌리면서 건설사와 토지주,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19년 7월 서울시는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일몰제를 도입해 세운지구 정비구역 해제 절차에 착수했고, 결국 사업은 본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게다가 청년들을 불러 모아 기존 장인들과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취지의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역차별을 조장했다는 말까지 들려오고 있다.

 각종 공구상, 철물점이 즐비한 외곽은 마치 옛날 홍콩영화에서 묘사된 슬럼가를 연상케 했다. 노후화의 흔적이 역력한 건물의 외벽은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정체 모를 시커먼 자국들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낡은 간판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소란스러웠던 외부와 달리 상가 내부는 적막한 고요만이 흘렀다. 셔터가 내려져 있거나 혹은 아예 비어버린 점포들이 즐비했으며, 미약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마저도 오가는 사람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상가 5층에서 구멍가게를 20년 동안 운영해온 상인 A(58)씨는 재개발이 중단된 현실에 대해 “(재개발을) 한다고 했다가 또 안 한다고 했다가,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인근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주민 B(67)씨는 “다 쓰러져가는 동네를 이렇게 둘 이유가 없다, 신속히 재개발을 해야한다”며 중단된 재개발 사업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야심차게 준비했던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년 동안 전파상을 운영해온 장인 C(75)씨는 “솔직히 말하면, 좋은 말은 해줄 게 없다”며 “내 평생을 이곳에서 이 일에 바쳤는데 청년들은 찾아오지도 않고, 애꿎은 임대료만 올라 모두들 가게 문을 닫고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사업 진행 후 10만원 가까이 임대료가 올랐는데 그냥 문 닫고 나가라는 소리다”고 말하며 씁쓸한 현실을 피력했다. 반면 청년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팹랩서울’을 비롯한 4곳의 상가들은 무상으로 사무실을 쓰고 있거나 10~20만원의 임대료만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상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다.

 소란스러운 외곽과 달리, 다시 한번 바라본 세운지구는 침울해 보였다. 개발한 지 50년이 넘어 낙후된 세운지구를 대대적인 재정비사업이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터전을 잃고 내몰릴 위기에 처한 장인들의 비극적 현실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다시 한번 마련해야 한다. 민·관이 협력해 상생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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