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제콜, 프랑스 현대사회의 또 다른 ‘귀족’ 창출
상태바
그랑제콜, 프랑스 현대사회의 또 다른 ‘귀족’ 창출
  • 김현비
  • 승인 2019.09.30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콜 폴리테크닉 (École Polytechnique)

 

역대 최연소로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드골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 프랑스 최고 고등교육기관 그랑제콜(les Grandes Écoles) 출신이며, 드골과 사르코지 역시 각각 그랑제콜 중퇴, 입학시험 준비반인 프레파(prépa)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교육 제도를 이야기할 때는 흔히 ‘평등’을 얘기한다. 실제로 평등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한 축이다. 실질적 무상에 가까운 등록금과 비교적 낮은 대학 문턱, 대학 평준화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등만을 강조하는 것은 프랑스 고등교육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소 상반되는 ‘치열한 경쟁’ 역시 또 다른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입 제도는 대입 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만 거두면 지망 대학 중 임의로 배정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을 거둔 극상위권 학생들은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 제2의 입시를 시작하게 된다.
그랑제콜은 18세기에 국가 엘리트 양성 기관으로 처음 설립됐다. 당시 신학과 순수학문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 대학들과 달리, 그랑제콜은 기술, 정치 등 실용적인 학문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68혁명 이후 대학 평준화로 인해 일반 대학 간 서열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 특수한 형태의 대학은 살아남았으며, ‘대학 위의 대학’으로써 위치가 굳어졌다. 현재 그랑제콜과 프랑스 일반 대학 간 관계는 국내의 일반 고등학교와 특목고의 관계와 종종 비교된다. 임의로 배정받는 일반 대학과는 달리 그랑제콜은 특수화된 분야의 수업이 진행되며, 학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랑제콜 입학 준비생들은 2년 과정의 프레파에서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준비반의 상위 2.5%가량만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으며, 국립대와는 달리 학교별 계급이 뚜렷하기 때문에 매우 치열하다. 특히 시앙스포, ENA, 에콜폴리테크닉 등 명문 그랑제콜 입학을 위해서라면 값비싼 사교육과 등록금, N수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학생들이 끊임없이 경쟁하는 이유는 졸업과 동시에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 고위직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랑제콜이 창출하는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세습은 경제적 자본과 달리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쉽게 고도화되고 해결하기 어렵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2017년 5월 자신의 모교인 ENA를 폐지하겠다는 정책까지 발표했다. 또한 입시 전형 다양화와 기회균등전형의 시행 등 제한적이나마 사회적 비판을 수용하는 제도도 등장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