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는 두 번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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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는 두 번 울지 않는다
  • 최우석
  • 승인 2019.10.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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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다?라고. 여기서 말하는 이웃의 정의는 문화와 환경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그 앞에 ‘소외된’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이는 모든 것을 초월해 시대를 관통하는 깊은 울림을 가지게 된다. 영화 <조커>는 소외되고 멸시받으며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인간이 결국 극단적인 광기에 잠식당해가는 비극을 소상히 그리고 있다. 아서는 자기애적 과대망상증과 병리적 웃음 유발 등의 병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다. 낡은 빌라에서 늙고 병든 어머니와 힘겹게 살아가지만 극진한 효심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언제나 타인에게 선량하며 평생의 꿈인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광대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무차별적인 조롱과 물리적 폭력 그리고 세상의 멸시뿐이다. 하지만 아서는 “언제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렴, 해피”라는 어머니의 말과 코미디언이 돼 힘든 세상에 웃음을 선물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냉혹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사회는 끝까지 그를 천대하고 무시했으며, 그의 아이 같은 선량함과 순수함을 이해해주는 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상황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그의 발작적인 웃음을 두려워하고 비난했으며 조롱거리로 삼았다.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벅찬 현실 속, 우연히 알게 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과 평소 극진히 존경했던 유명 코미디언으로부터 받은 씻을 수 없는 모욕과 멸시로 인해, 아서는 결국 순수함을 상실하고 만다. 완전한 광기에 물들어버린 ‘조커’로 재탄생하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서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가 어떻게 세상과 투쟁하며 끝에 가서 파멸하는지를 서사적인 동시에 환상적인 연출 기법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은 섬세한 연출의 절정은 작중 ?계단?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사회로부터의 온갖 멸시와 조롱, 비난으로부터 야기되는 정신의 파멸과 무의식적 증오의 배양은 높고 험한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내면의 감춰진 진정한 자아였던 ‘조커’로서의 아서가 재탄생하는 장면에서는 계단을 가볍고 힘차게 내려오는데, 이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편견과 박해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이 느끼는 환희와 흥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연출이며,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관통하는 대주제인 ‘멸시’와 ‘비극’, 그리고 ‘웃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잘 드러나는데,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였어”라고 말하는 아서의 독백은 우리들에게 반문하는 듯하다.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비웃고 멸시하지는 않았는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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