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과 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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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과 어항
  • 신정현(국문 19)
  • 승인 2019.10.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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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남의 일에 신경을 많이 쏟는 듯하지만 결국 죽어도 관심이 있는 건 자기의 일이다. 사람들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확실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부정확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렌즈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면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범람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몇 가지 정보로 전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고 탐색하는 기간을 꽤 오래 가진다. 내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정보 수집 기간이 끝났다고 판단하면 나만의 왜곡 렌즈를 장착하고 멋대로 휘젓기 시작하지만. 다들 속으로는 자신이 제일 영악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이 가장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나.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도 너를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제대로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할까? VR, AR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다들 자기만의 가상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자기만의 어항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인데.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문득 이런 사실이 신기하고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수능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춥고 지쳤던 겨울, 난방을 유난히 세게 트는 우리 동네 서점에서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서점의 푹신한 의자에 눕듯이 앉아 나른하게 감겨오는 눈을 꿈벅거리면서 읽었던 문장 하나가 기억이 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건너가지 못하는 심연이 있다’. 나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나는 나를 회피형, 방어형 인간으로 정의 내렸는데,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겁이 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 또한 부담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해서다. 한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단점들ㅡ단점들이라기보단 내 톱니바퀴와 맞물리지 않는 지점들ㅡ을 다 겪어내는 게 참 피곤하고 성가시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뛰어넘고 부대끼면 정말 친밀한 사이가 되지만, 그 친밀함에도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기는 것 같다. 경계선이 있는 친밀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거다. 그 심연을 뛰어넘고 상대방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날개를 달지 않는 이상 아무 데도 없다고 작가가 그랬다. 내가 맹신하는 엄마조차도 ‘관계’에 지쳐 하고 아직도 적당한 지점을 찾아 헤매는 걸 보면, 작가가 말한 ‘날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는 영원히 자기의 어항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신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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