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운동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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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운동하다(2)
  • 최우석
  • 승인 2019.11.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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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이여! 지금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진 : 이재효 기자

 

서강대 학생 운동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이 땅에 민주화의 꽃이 만개하기 전이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1년 서울의 대학가에서는 군부 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대규모 시위에 대처하고자 정부는 10월 15일 서울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시위의 주 발원지였던 대학가를 무력으로 점거한다. 군화의 잔혹한 발소리는 신속하게 진군했고 대학은 문을 닫거나 자체 휴교령이 내려졌다. 서강대 역시 그 역사의 광풍 속에서 시련을 맞았던 대학 중 하나였다.
 

 유신 정권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지만, 또 다른 군부 정권의 통치 아래 민주화의 꽃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1980년 5월 광주, 한 청년이 농민회 활동을 하기 위해 광주를 찾는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참상을 목도한다. 군부의 언론 탄압과 민간인 학살, 광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등을 두 눈으로 목격한 청년은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농민회 활동마저 접어들고 다시 상경해 시민들에게 현재 광주에서 자행되고 있는 계엄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한다.
 

 ‘동포여!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하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계엄군의 진입으로 유인물의 배포는 실패로 끝났고, 계엄군을 피해 도망치던 청년은 6층 난간에서 몸을 날려 투신한다. 그렇게 청년 김의기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그의 정신과 민주화를 향한 그의 신념은 오늘날까지 계승돼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서강대학교는 김의기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1년부터 매해 의기제를 주최하고 있다. 또한, 1985년 서강대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등의 대학과 함께 서울 주재 미국 문화원을 점거해 미국 측 대표들에게 한국 군부에 의해 자행된 광주의 참상을 고발한다. 이렇듯 서강대의 학생 운동은 1987년 민주화를 이룩하기까지 계속 전개돼왔다.
 

 서강대의 학생 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현장에서 함께 숨 쉬며 약진해왔다. 자유를 향한 외침과 투쟁,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이 땅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불의에 저항하며 뜨거운 횃불처럼 불타오르던 학생 운동의 열기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 힘을 잃어갔다. 비단 서강대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대학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공통된 흐름이었다. 이후 서강대의 학생 운동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고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학풍과 여러 내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거대한 담론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부당함에 저항하는 목소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강사랑’은 이사회 정상화와 폐쇄적 총장선출과정의 개선을 요구하는 단체다. 서강사랑에서 활동한 김시은(24)씨는 “당장 내 눈 앞에서 벌어진 부조리에 맞서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삶에서는 더욱 부당한 일에 저항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 문화가 서강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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