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할리우드에 선전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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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할리우드에 선전포고하다
  • 김현비
  • 승인 2019.11.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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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과 닉이 파티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
레이첼과 닉이 파티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

비에 쫄딱 젖은 싱가포르인 가족이 미국의 한 고급 호텔에 들어간다. 직원은 그들이 그 호텔에 묵을 수준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방이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나가지 않으면 경비원을 부르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화가 난 가족은 전화 한 통으로 그 자리에서 호텔을 사들인다. 의기양양하게 최고급 방을 안내받는 그들과 벙찐 표정으로 서 있는 백인 직원들의 모습의 대조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신선한 장면이다.
서양 문화와 백인 주인공이 중심이고 동양인들은 조력자 혹은 우스꽝스러운 조연으로 나오는 게 대부분인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는 그 역할이 전복된다. 동양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백인들이 조연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아시아인들에게 할리우드가 백인 중심의 이야기 전개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초석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쳐 싱가포르 명소들과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만두를 빚는 모습 등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문화적 신선함으로 비(非) 아시아계 문화에서 오히려 더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미국 국적의 동양인 레이첼 추가 싱가포르 억만장자 집안의 닉 영과 결혼하는 과정으로, 레이첼이 어떻게 시어머니 엘리노어의 반대를 이겨내는지를 다룬다. 이처럼 뻔한 내용과 평면적인 등장인물들로 인해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동양문화의 신선함을 이유로 과분한 평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 엘리노어는 그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레이첼을 매우 탐탁지 않아 한다.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동양문화와 개인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미국문화 간의 충돌인 것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동양인 이민자들의 정체성이 아시아인이 아닌 미국인이며, 이들을 미국 문화의 엄연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시각이 오히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고착시킨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중국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중국계 미국인 인물들로만 구성됐다. 또한 중국인이 아닌 아시아계 배우들은 전부 캐스팅에서 배제됐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아시아계 인종을 전부 배제하고 중국만을 동양 문화인 것처럼 그리는 것은 왜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계에서 최초로 철저히 동양인 중심이면서,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할리우드 속 동양인들이 보다 차별 없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개봉연도: 2018
감독: 존 추
출연: 콘스탄스 우, 헨리 골딩
상영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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