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현실과 허구, 그 경계를 허무는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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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현실과 허구, 그 경계를 허무는 마술
  • 김현비
  • 승인 2019.11.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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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적 특징인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ágico)’는 그 이름부터 상당히 괴상하다. 마술과 사실은 상식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독창적이고, 또 특별하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돼 현실적인 배경이 공격받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소설 『픽션들』에서 만들어낸 허구적 국가와 인물을 사실과 마구 뒤섞어 마치 실재하는 양 설명한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는 옅어지고, 독자들은 더 이상 그 둘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마콘도라는 마을에서 100년의 세월 끝에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기가 막힌다. 근친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가 개미에게 먹힘으로써 가문의 대가 끊긴다. 그럴듯한 일반적인 소설의 중간중간에 이처럼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등장한 당시 세계 문학의 흐름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는 문학에서 사실적인 면모만을 추구하던 과거의 ‘모더니즘’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과거의 문학이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세계만을 배경으로 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의 범위를 무의식, 초월적 세계로까지 확장한다. 이러한 흐름은 문학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철학에서 니체는 이성에서 벗어나 광기와 본능, 무질서, 환상에 의해 지배되는 ‘디오니소스형 인간’을 발견했다. 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혁신 그 자체였지만, 문학적 배경의 급격한 확장으로 인해 기존의 문학적 언어가 더 이상 그 배경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인식론적 한계’를 초래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르투갈을 비롯한 서구 열강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남미 문학가들은 문학 작품 속에서나마 암울한 식민 지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 도구로 마술적 사실주의를 택했다. 즉 마술적 사실주의는 ‘정복자로서의 현실과 피정복자로서의 현실을 동시에 한 가지 작품 속에 담아내야 했던 당시 문학적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법’이었던 것이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유사하게 ‘초현실주의’라는 모더니즘 탈피 운동이 나타나긴 했지만,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초현실주의가 무의식, 공상과학 등을 통해 문학의 배경을 넓혔다면, 마술적 사실주의는 순수한 판타지 그 자체를 역사적인 현실 세계와 병치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식민 지배 탈피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된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나타나는 셈이다.
처음 마술적 사실주의의 시작은 그런 용도가 아니었지만, 남미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문학 세계를 담아내는 도구가 됐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환상이 문학사에 세계적인 한 획을 그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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