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그 숫자에 담긴 의미와 가능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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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그 숫자에 담긴 의미와 가능성(2)
  • 김도연
  • 승인 2019.12.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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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의 역사를 되짚어보다
초창기 서강타임즈 기자들의 모습(출처 :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초창기 서강타임즈 기자들의 모습(출처 :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언론은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존재한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밝히는 일, 구성원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일, 사회의 여러 사건을 보도하는 일 모두 언론의 역할이다. 대학에도 건강한 대학 사회를 지탱하는 대학 언론이 있다. 이들은 학내·외 소식을 보도하고 청년들에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며 학내 구성원 및 일반독자 간의 유대를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신문은 1947년 9월 1일, 중앙대가 창간한 ‘중대학보(현 중대신문)’이다. 곧이어 고려대가 ‘고대신문’을 발행하면서 대학 신문이 각 대학에서 중요한 기구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대학 신문이 도입된 초반에는 불안정한 국내 정세상 열악한 제작환경으로 인해 초보적인 수준의 제작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학생 기자들이 기획, 편집 등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담당하면서 여러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 신문의 역사를 말할 때면 민주화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대학 신문은 부당한 발행 중단이나 폐간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기성의 제도 언론에 맞서 시대의 양심을 증언하고 일부 기득권 집단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진실을 폭로해왔다. 이처럼 대학 언론은 학내·외를 가지리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서강학보의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강학보의 모태는 개교 당시 학내 유일한 언론매체였던 ‘서강타임스’다. ‘서강타임스’는 1960년 서강대학교 개교와 동시에 창간됐다. 개교와 동시에 학내 언론이 창간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서양식 학내 언론에 익숙한 예수회 신부들의 지원이 숨어 있었다. 창간 초창기에는 기자들에게 따로 배정된 교내 공간이 없어 주간 교수의 자택에서 원고를 작성하고 편집하기도 했으며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신문을 한 달에 한 번 발행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서강타임스 기자들은 식지 않는 의지로 취재를 이어갔고 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많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부당한 권력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돼 결국 1980년 서강타임스 144호는 폐간 조치된다. 일방적인 폐간 조치 이후에도 꾸준히 모임을 갖던 학생 기자들은 학보 없는 대학은 존재할 수 없단 생각에 이듬해 ‘서강학보’라는 이름으로 복간을 기획한다. 그리고 이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선배들이 열망하던 민주화는 현실이 됐고, 그들이 일궈놓은 자유 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학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학생 기자들처럼,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학내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학 언론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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