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진지충’에 관한 은근히 진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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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진지충’에 관한 은근히 진지한 고찰
  • 김휘영(문화평론가)
  • 승인 2015.09.15 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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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유명 대학교 신문사 기자로부터 ‘요즘 세대들은 진지함을 기피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진지하면 진지충이라고 놀리고, 오글거린다며 피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단 가볍게 넘어가곤 합니다. 평론가님께선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와 관련된 문제점 진단과 해결방안 등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사회 문화적인 트렌드에서 ‘민주’나 ‘인권’ 같은 거대담론이 퇴장하고 소소한 일상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시대로 전환된 게 하나의 원인이라 본다. 이런 경우 격렬하고 정치한 논쟁보다는 가벼운 농담이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나서게 된다. 구성적 요소로도 진지함을 기반으로 하는 비극보다 희극이 유행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주 접하는 미디어들의 인기 예능프로들만 봐도 작가의 치밀한 구성보다는 출연진의 가볍고 즉흥적인 애드립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고 이런 유형의 콘텐츠들이 대중문화시장에서 과도하게 소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기성세대의 권위가 철저히 붕괴된 것과 관련이 크다고 본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참극을 몸소 경험한 세대가 바로 ‘○○충’이란 용어를 가장 많이 만들고, 쓰고, 수용하고, 전염시키고 있는 세대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고 싶었고 또 믿을 수밖에 없었던 어떤 선장의 책임과 의무가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을 때, 시스템으로서의 사회적 신뢰기반이 와르르 무너졌고 기존의 모든 권위가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고 봐야 한다.
 믿었고 또 믿어야만 했던 기성세대들에게 치명적인 배신을 당한 이 세대는 크나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게 분명하고 그들의 가눌 수 없는 분노를 직접 해소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경우에 희극 중에서도 용서와 포용이라는 속성을 가진 해학보다는 공격성을 가진 날카로운 비꼼이 유행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진지한 설명과 해명은 듣기에 짜증만 부르는 비겁한 변명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보면 설명충이라는 말도 나옴 직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됐을 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런 비꼼과 풍자가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을 넘어 현세대의 젊은이들 스스로 자괴감을 키우고 더 나아가 책임을 회피하는 풍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한 단계 성숙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진지해? 그거 농담이었거든’ 하면서 은근슬쩍 회피하고 교묘하게 모면하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때로는 진지함을 비꼬는 정도에서 벗어나 노력충, 출근충과 같이 자기 자신을 자조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맘충, 설명충과 같이 상대방을 비하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사실 이 ‘○○충’에서의 ‘충’이 ‘벌레 충(蟲)’ 으로서의 의미보다 충실한(faithful), 성실한(sincere)의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faithful’ 은 서양에서 신의 성실을 의미하지만 일상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람(cheating)피우지 않고 헌신하는’의 의미로 더 자주 쓰이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용어다.
 노력충, 출근충과 같이 자기 자신을 자조하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자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용어에는 자기보호의 본능에서 나온 방어기제로서의 ‘한국적 겸손’의 의미도 갖고 있음도 읽어내야 한다. ‘난 이렇게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면 칭찬에 인색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래 너 잘났다!’ 라는 식의 과민반응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리 겸손한 태도를 보임으로서 이런 공격적 반응을 방지할 수 있는데, 자신을 낮추는 표현으로 ‘벌레 충(蟲)’은 자신을 보호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풍조의 근저에는 인간소외에 의한 박탈감이 깊게 도사리고 있다고 짐작한다. 스스로가 개성을 인정받고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군집 속에서 일만 하다 생을 마감하는 개미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자조감에서 ‘벌레 충(蟲)’이 나오게 한 것이라면 우리 사회는 정말 심각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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