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선생님을 가르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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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선생님을 가르치는 이유
  • 이재원(문화평론가)
  • 승인 2016.09.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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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1 ‘교육희망 프로젝트-배움은 놀이다’에는 ‘거꾸로 교실’이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일부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거꾸로 교실’은 교사가 강의하지 않고, 학생들끼리 서로 가르쳐주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모둠별로 둘러앉아 시끌벅적 스스로 수업을 하는 학생들 틈에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둘러보기나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교사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수업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일까. 교재를 만들고, 동영상 강좌를 미리 녹화해 수업 전 학생들이 미리 공부하고 오도록 돕는다. 물론,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이런 방식은 모범생 학생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전교 1등을 가능하게 했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명예퇴직을 고려했던 할아버지 선생님에게는 가르치는 일의 보람을 알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보다 문득 몇 해 전, 대치동에서 유명하다는 한 학원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학원의 수업 방식이 독특해 학부모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인기의 비결은 학생이 교사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그럼 교사는 무엇을 하지?”라는 질문에 대치동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커리큘럼을 만들고 교재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대. 아이가 선생님한테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좋은 방법이지.” 대치동 이야기에 사실 의구심을 품었었다. ‘학원에 가서 가르치는 수업을 해내기 위해 아이들이 학원 선행학습까지 하며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꾸로 교실’은 학생들이 미리 읽고 와 함께 토론하는 대학원 방식에 가깝다. 학생이 학생들끼리 수업을 가르치는 방식은 우리나라 문화에서 획기적인 방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던 생각은,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공부해”라며 일방통행으로 학습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변하곤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학생들은 몰래 휴대전화를 보거나 졸며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데만 의미를 두고, 선생님은 듣지 않는 학생들과 상관없이 혼자 진도를 나가며 서로를 ‘유령’ 취급하는 일도 다반사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스펙 관리에 대한 압박 때문에 대학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어 세상을 바라볼 힘과 지혜를 기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수업은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서로가 고역인 시간일 수밖에 없다.
‘거꾸로 교실’이 성공을 거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 덕분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사회구조, 문화 생산물, 비즈니스 모델 등 경계가 허물어지는 컨버전스(convergence) 시대의 핵심인 참여를 가능하게 했기에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젠킨스(Jenkins)는 20년간 몰두한 팬덤 연구를 확장해, 컨버전스 시대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하는 참여문화(participatory culture)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해냈다.
신문이나 방송, 영화 등 전통 미디어(legacy media) 위주로 콘텐츠가 제작되어 전달되던 시대에는 소비자가 참여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독자투고나 시청자의견을 받아 매우 일부만 반영하는 정도였다. 팬들은 그런 시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생산자가 만든 콘텐츠를 갖고 놀았다.
10여년 전 이미 <해리포터> 초등학생 팬들은 자신들만의 사이트에 호그와트 학교를 만들어두고 각자 사연을 올리고, <해리포터> 줄거리를 바꾸기도 하며 신나게 즐기다 영화 제작사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었다. 팬들은 도리어 불매 운동을 벌여 영화 제작사를 손들게 만들었다.
영화 제작사는 <해리포터>가 제작사만의 ‘생산품’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생산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인 셈이다. 호주 학자 브룬스(Bruns)는 이제 생산자와 이용자가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 프로듀저(produser: producer+user)의 시대라고 제안한 바 있다. ‘이용자 주도의 콘텐츠 창조’(user-led content creation)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업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과정으로서의 생산이 이제 교육 현장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학생이 자신이 궁금한 바를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편하게 질문할 수 있는 참여문화를 강의실에 수용해내는 현상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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