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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영화의 면죄부는 없다
박우성(영화평론가)  |  bagus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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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3  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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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에 의문이 생겼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정말 훌륭한 영화야……. 여기서 ‘훌륭하다’는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를 통해 공동체의 윤리, 시대의 이념, 삶의 지혜, 현실 고발, 인문학적 성찰 등을 깨달았다면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때의 영화를 훌륭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동시에 그것은 아주 잘 만든 영화여야 한다.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통째로 껍질째 먹는 과일과 알맞은 크기로 잘라 가지런하게 접시에 담아서 포크로 찍어 먹는 과일은 완전히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윤리, 이념, 지혜, 고발, 성찰 등이 담겨 있다 해도 살아 숨 쉬는 영화언어로 매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위험하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이성복 시인은 『무한화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여준다고 해서, 다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 밖으로 드러나면 힘이 없어요. 포르노는 두 번 다시 안 보잖아요. 윤리나 이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포르노에요. 그것들을 얘기할 때는 에로티시즘으로 하세요.” 포르노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에로티시즘(=형식)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야기는 아무리 훌륭한 윤리나 이념(=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성복 시인의 생각이다. 이 주장은 이미 자연스럽게 증명되고 있다. 나의 설명과 시인의 설명은 비슷한 생각을 담고 있지만 가히 하늘과 땅 차이이다. 내가 어쭙잖은 개념으로 강조한 형식의 중요성이 이성복 시인의 문구에서는 쉬운 단어와 간결한 리듬으로 세련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드러내는 방식이 형편없으면 이야기는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위험해지는 것이다.
<암살>(최동훈, 2015)은 일제 강점기의 항일 운동을 다루며 작품성이나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슴에 올바른 역사관이 새겨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쌍둥이 설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근래에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만주에서 거칠게 자라 군인이 된 안옥윤과 고생 하나도 안 하고 경성에서 애지중지 자란 미츠코를, 딱 봐도 피부 톤에서부터 확연히 구분될 쌍둥이를, 단지 생물학적 일란성 쌍둥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 나오는 인물 대다수가 동일 인물로 착각하다니? 친일파 척결을 흥미롭게 구경하기 이전에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냥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편, “대중은 어차피 개돼지입니다”로 유명한 <내부자들>(우민호, 2015)은 어떨까? 기득권의 부패를 예언적으로 비판했다며 호평을 받은 이 영화에서 우리의 감정이 향하는 곳은 과연 누구일까? <내부자들>은 개돼지로 취급받는 억울한 ‘국민’의 자리에 손이 잘린 ‘조폭’을 배치한다.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그만 조폭을 응원하는 위치로 떠밀리는 것이다. 정경유착에 비해 조폭은 순수하다는 의미인가? 최악에 비하면 차악은 괜찮다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우리들 중 조폭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일제 강점기 조선 여성의 수난을 담은 <귀향>(조정래, 2015)은 어떨까? 위안부와 관련하여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윤리적으로 훌륭해 보인다. 개봉 즈음 단체 관람 열풍이 이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뜨겁게 고발하기 위해 이 영화는 여성의 신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시한다. 우리는 고통에 공감한 것일까? 아니면 고통을 구경한 것일까?
영화감독은 영화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영화 대신 세상을 책임지려 달려드는 것 같다. 세상을 떠안기 바빠서 정작 영화를 대충 수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기상천외한 정치 스캔들, 삐뚤어진 이념과 윤리관, 왜곡된 젠더 의식 등으로 한국사회는 신음하는 중이다. 한국영화는 고발하고, 분노하고, 싸우기에도 바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변명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뭔가 속고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든다. 혹시, 세상을 방패막이 삼아 영화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등한시하는 건 아닐까? 세상에 대한 뜨거운 발언으로 형편없는 연출 실력을 감추려는 건 아닐까? 내용으로 형식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고발하고, 분노하고, 싸우는 영화가 아니다. ‘잘’ 고발하고, ‘잘’ 분노하고, ‘잘’ 싸우는 영화이다. 세상이 이상해지면 영화를 찍고, 보고, 판단하는 기준도 이상해진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상한 세상은 형편없는 영화의 면죄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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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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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da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2017-09-19 23: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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