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발견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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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발견하는 미래
  • 권경우(문화평론가)
  • 승인 2017.04.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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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특징은 모든 세대가 불행하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청년세대와 노년세대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 그 부모 세대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세대는 없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다.
그 중 청년세대는 학업과 취업, 연애와 결혼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1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은 이 시대 청년의 우울을 나타내는 지표다. 문제는 탈출구나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단순히 정책이나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서적, 심리적 문제로까지 확대됨으로써 개인의 삶이 송두리채 망가지고 있어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청년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있다. 정작 현실에서는 그 기술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정말 심각한 것은 초단기 일자리의 반복으로 인한 삶의 파편화와 개인이 겪는 정서적 고통, 그로 인한 취업 자체를 포기하고 마는 절망 세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절망 세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한 정책과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 세대가 오해하고 있거나 미처 감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지자체 중심의 지역에서 일을 한 지 2년이 넘었다. 지역에서 청년 세대를 바라보면서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일단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청년들이 정말 많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과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전문성이 깔끔하게 적용되는 일은 없다. 현실은 우리가 메뉴얼에 따라 레고를 맞춰 완성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 수많은 레고 조각들이 메뉴얼 없이 맞춰지는 과정이 현실이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지역에서는 더 크게 작용한다.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획득한 졸업장과 자격증, 경험 등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충분하다면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매뉴얼과 교과서에 기반한 삶이다. 현실은 매뉴얼과 교과서를 해체하는 삶이다.
현실 관점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든 광장 정치는 민주주의 과정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촛불집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국가나 사회적으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쉽사리 바뀌지 않는 억압적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지난 한국 현대사에서도 광장의 정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 서울시 차원에서 ‘촛불 시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광장의 정치는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무엇보다 국민과 시민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정체성의 문제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장에 나오는 시민들은 세대와 계층, 지역, 직업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다양하게 살아간다. 직업이나 주거, 연봉 등 삶의 조건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그 조건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에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광장이라는 현실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들이 광장으로 이동해서 모이는 순간 개별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성북동에는 ‘마을술집’이 생겼다. 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보증금을 마련해서 공간을 임대하고, 잠시 ‘쉬는’ 예술가가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공간 간판이나 벽면 등에는 작가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테이블 등 필요한 가구 등은 건축가, 설치미술가, 연극인 등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다. 이렇게 완성되는 공간은 마을의 공간이자 예술가들의 공간이 된다. 다양한 활동과 모임이 이 공간을 통해 이어지고, 그것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주체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마을은 공동체의 축소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의 토대에는 ‘공동체’라는 공통의 이상이 있다.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갈등하는지, 지속되는지 등의 모습이 모두 마을, 곧 지역에 있다. 이제 지역에서 활동하고 실험하고 꿈꾸는 개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시대를 구원할 영웅을 원하지만, 영웅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철학자 미셀 푸코의 말처럼, “당신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그 일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당신이 하는 그 일이 무엇을 하는지 안다는 것은 일상과 노동, 삶과 예술, 마을과 광장이 연결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맞이한다.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자. 다만 각자가 자신의 삶의 영역과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활동해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시오도어 젤딘의 말은 이를 위한 힌트를 제공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저 심장이 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심장은 어떻게 뛰고 다른 정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채는 일이다. 삶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질병은 ‘생전 경직(rigor vitae)’, 곧 호기심을 다 태워버리고 반복적이고 무감각한 일상에 안주하는 정신의 경직 상태다.” 그것이 바로 광장혁명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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