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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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풍경
  • 이정현(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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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피자마자 떨어지고 벌써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5월 말이다. 매년 대학의 문학 강의 시간에 ‘청춘’과 ‘상실’의 관계를 논하곤 한다. 어른들은 늘 풋풋함과 패기 같은 이미지로 청춘을 미화시키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청춘은 무지하고 나약한 시절이다. 정말 미워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과는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주고받았으니까. 세상의 질서를 바꿀 정도의 권력과 돈도 없었고 절박한 심정으로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대도 현실과 이론은 늘 아귀가 맞지 않았다. 과거를 미화하기에는 우리 세대에게 내세울 만한 전리품이나 강렬한 기억 따위가 없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히트로 정치적 갈등이 제거된 채 문화적으로 박제된 그 시절의 누락된 이야기들이 가끔 울컥거릴 따름이다. 가끔 스무 살의 학생들이 나의 ‘스무 살’을 물을 때면 알 수 없는 당혹감에 머뭇거렸다. 학생들과 몇 권의 책을 겹쳐 읽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한 학생이 있다. 그는 학생회 간부인 애인을 걱정하면서 시위 물결의 끝자락에 어정쩡하게 서 있곤 한다. 어느 날 자기 또래의 학생(강경대)이 시위 도중 사망한다. 그 죽음에 분노한 학생들은 시내와 학교에서 잇따라 분신한다. 그의 삶은 그 장면을 본 이후 혼돈에 빠진다. 학생회 간부들이 수배되자 그는 도피한 선배들의 지시를 따라서 독일에 파견된다. 그러나 서울의 운동권 지도부는 와해됐고 그는 독일에 홀로 남게 된다.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의 대강의 줄거리다. 소설의 주인공은 1991년 5월 ‘분신정국’을 겪으면서 자기 또래의 죽음을 보고 강렬한 슬픔에 젖는다. 그는 독일에서 역사적 상처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한다.
 또 다른 대학생을 응시한다. 1999년, IMF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민주화투사’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최루탄과 남산의 공포감은 이제 캠퍼스에 전설로만 남았다. 학생운동의 공백을 스타크래프트와 핸드폰이 빠른 속도로 메우고 있었지만 미학과를 다니던 그는 좀 ‘낡은 사람’들, 그러니까 마르크스와 인간소외, 그리고 철학과 문학을 얘기하는 선배들과 어울린다.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핍박받았고 세상의 부조리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던 선배와 친구들은 하나둘 이탈한다. 유학을 떠나고, 고시에 합격하고 기득권의 논리에 순응한다. 환멸감에 젖어 그는 군대로 도피한다. 2000년대 중반에 복학한 그가 마주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런 대학의 풍경이었다. 성형외과 의사가 미학과 학위를 따서 개업 간판에 게시하고, 미학과 교수가 미스코리아 심사를 들어가는가 하면 ‘A+ 폭격기’로 유명했던 괴짜 교수는 혹독한 강의평가를 받은 후 침묵을 지키는 ‘평범한 교수’가 되었다. 손아람의 소설 『디 마이너스』(2013)에 담긴 이야기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지만 이 책을 읽고 혼자 많은 술을 마셔야 했다. 그것이 세대적인 공감 탓인지 아련한 추억 탓인지는 아직 답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본다. 모두 명문대를 다니고 외모까지 출중한 학생들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은 세상을 “완벽하고 시시한 곳”으로 여긴다. 뚜렷한 적대도, 변증법적인 발전도 없고 온전한 위안도 없지만 변화와 저항 따위를 꿈꿀 수 없는 곳. 이들에게 세상은 따분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살 사이트를 열고 자신들의 자살 과정을 세상에 ‘생중계’하고 웹 사이트에는 호기심에 사로잡힌 네티즌들이 폭주한다. 장강명의 데뷔작 『표백』(2011)에 그려진 풍경이다.
 대학에 오래 머무른 탓에 ‘91년 5월’을 겪은 선배들을 만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20대를 보냈다. 2010년대에는 강의실에서 ‘표백세대’의 청춘들을 만나고 있다. 위아래 세대와 괴리감을 느낄 때면 희미한 소외감이 엄습한다. 그 소외감을 털어내면서 각기 89학번, 99학번, 09학번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들을 다시 읽었다. 2017년, 지금-여기 대학에 존재하는 학생에게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써볼 것을 권했다. 민주화 이후 어떤 방식의 독재가 가능한가를 여실히 보여준 지난 두 정권 시기에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교과서 논쟁을 목도하고, 촛불혁명과 탄핵을 겪은 청춘들의 이야기는 훗날 어떻게 적힐 것인지 궁금하다. 어제(5.18) 새로운 대통령이 광주에서 낭독한 기념사는 과거와의 화해를 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향한 축사처럼 읽히기도 했다. 나도 몇 마디를 덧붙인다. 상처와 슬픔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그 시절의 풍경을 그리기를. 나약하지만 청춘은 그 자체로 축복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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