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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에 담는 여행의 추억
이유진  |  maymay9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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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23: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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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어로 그림을 끄적이는 사람을 뜻하는 ‘리모’라는 필명 아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풍경들을 그려내는 김현길 작가.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이뤄진 김 작가의 여행일지는 그 신선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사진기 대신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여행길을 걷는 김현길 작가를 만나봤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서 여행드로잉작가가 되기까지
김 작가는 학창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내향적인 소년이었지만 동시에 뚝심 있는 성격이었다고 밝혔다. 생각이 많고 그가 옳다고 믿는 것을 고집하는 면 역시 있었다고. “살아가는데에 일종의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에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그가 그린 캐릭터와 이야기로 채운 공책 열네 권 분량의 만화를 그의 선생님에게까지 인정받은 일화는 어린 김 작가에게 스스로의 손으로 일궈내는 성취와 소통의 즐거움을 안겨줬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선택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조직 환경에서는 그가 기대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비롯되는 성취감보다 스스로가 프로젝트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그는 무턱대고 회사의 문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회사와 맞지 않고 그림이 좋아서 충동적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오래할 수 있는 일을 시간을 들여 찾았다. 지친 회사생활의 낙이었던 여행에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스케치하며 느낀 성취감을 직업으로 이어가기 위해, 김 작가는 퇴직 전 2년 간 전문적인 그림연습을 비롯해 멘토 작가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구하며 감내해야할 부분들을 파악했다. 전문미술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무해 다른 드로잉작가들에 비해 정통성이 떨어졌던 만큼 그는 첫 책을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한 사회적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김 작가는 여행도서 시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장소 답사를 다녀오는 등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막연하게 성공만 바라보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면 금방 포기했을 것 같다”며 “제가 꾸준히 도전해왔던 그림이라는 분야였고, 철저하게 준비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모'라는 새 이름 아래
‘여행드로잉작가’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김 작가는 익숙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좁은 의미로는 글과 그림으로 여행을 이야기하는 작가이고 넓은 의미로는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가 여행을 그림으로 남기게 된 계기는 그림이라는 매체가 주는 ‘더하기의 미학’에 있었다. 그림의 경우에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요소들을 더해가며 자신이 기억하고자 하는 가장 완전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더 정확하게 찍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담기는, 즉 ‘빼기의 미학’이 필요한 사진과는 대비된다. 따라서 드로잉으로 여행 풍경을 기록하게 되면, 사진을 찍을 때보다 더 깊은 관찰을 해야 하고 이것이 여행 그 자체를 더 음미할 수 있게 한다고.
여행지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묻자 김 작가는 답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경향이 크다고 대답했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여행을 통해 자유를 느낀다고. “북유럽의 경우에는 그 나라의 정치 시스템과 그 시스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가게 됐어요. 작년에 우리나라가 좀 시끄러웠잖아요. 그래서 국가신뢰지수와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은 무엇이 그리 특별한지 그 곳에 머물며 직접 느껴보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덴마크의 어촌마을 스카겐을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꼽았다. 북유럽 특유의 조용하고 정갈한 모래사장과 지구의 최북단 그레넨 해변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서 밀려드는 두 파도가 맞부딪히는 격정적인 광경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한다.
직업이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그림을 끄적이는 탓에 김 작가의 블로그는 다양한 그림들로 가득하다. 기존에 김 작가는 윤곽을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 있는 펜 드로잉 기법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기도 한다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선이 딱 떨어지는 펜을 쓰기도, 부드러운 느낌의 연필과 물감을 쓸 때도 있어요. 또 꼭 그 장소에서 그림을 다 그려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졌고 그 풍경을 온전히 담고 즐기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됐어요.” 물론 그는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체계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더 많은 풍경을 그리기 위해 더 다양한 기법들에 도전하고 있다.
 
리모가 그려갈 또 다른 그림
그는 작가로서의 활동 외에 다른 분야에도 임하고 있다. 수입이 적었던 시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드로잉 수업은 이제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시간이 됐다. “함께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됐어요. 일전에는 혼자 여행을 떠나서 혼자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수강생 분들과 그림으로 소통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 작가는 수강생들과 함께 해외 드로잉 여행을 계획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드로잉 여행 계획을 묻자 그는 여름에 방문했던 제주도 백록담을 겨울에 다시 찾을 것이며, 북유럽 여행 중 유일하게 방문하지 못했던 아이슬란드 여행 역시 내년쯤에 예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여행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김 작가는 여행은 도전해볼 만한 인생의 과제라 권한다. 이때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행지를 가야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어디를 가고 싶은지 확실히 정해야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도 기억이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여행 목적을 충족하려는 갈증 때문에 더 깊은 시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이어 그는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는 좋아하는 일도 좋지만 지치지 않고 오래,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꿈이 곧 직업이라는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데여본 사람으로서의 조언이라며 “현실을 놓지 않은 채 수많은 경험에 부딪혀 보라”고 밝혔다.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누구보다 본인 삶에 치열하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김 작가. 그는 스스로가 오랫동안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멎지 않는 노력 끝에 행복과 성공을 모두 쟁취했다.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에서 더 다채로운 그림들을 기대해본다.

이유진 기자 maymay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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