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라는 평범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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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평범한 취미
  • 김이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19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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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영화 <옥자>를 봤다. 온라인 배급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그것 보다는 영화 내용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옥자>는 장르 소설의 규칙을 잘 활용해서 만든 영화다. 모험을 떠난 소녀가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낯익은 구조에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색채를 더해 내용을 신선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SF 영화적인 설정도 있다.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가축을 사육하는 시대가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상상을 서사적 이야기에 충실히 결합했다. 이런 것을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언급하지 않는다면 영화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 아니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는 해석이 중요하지 않다. 자신만의 감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나는 영화의 음악이 참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다소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도서관 이야기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도서관의 책들을 보고 놀랐던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가봤던 어느 구립 도서관 보다도 책이 많았고, 특히 SF와 판타지 소설 역시 많아서 놀랐다. 절판 되어 서점에 없는 책들까지도 그곳에는 다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해 다른 착가들의 책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지금 나는 SF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서는 장르 소설을 읽는 취미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장르 소설 뿐 아니라 독서 자체가 특별한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 다 큰 어른이 책 읽으라는 잔소리를 들어야하겠는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 편견과 달리, 요즘 사람들도 글을 많이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의 글을 읽고, 인터넷 뉴스를 읽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 이를테면 웹툰을 읽는다.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웹툰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다른 어느 미디어와도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되는데 왜 굳이 웹툰을 읽는가? 거기에는 웹툰을 읽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둘만한 여러 이유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일 텐데, 중요한 것은 한국 소설은 그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장르소설을 읽는 행위를 특별한 일로 취급하는데, 심지어 그 풍조는 문학계에서도 그렇다. 장르소설은 못 읽겠다는 말을 문단 안에서도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문제될 것 없는 선택이지만 문단 안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좀 다르다. 조지 오웰은 훌륭한 작가지만 『1984년』은 SF소설이라서 읽지 않는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은 고다르의 영화는 좋지만 <알파빌>은 SF영화라서 안 본다거나, 히치콕 영화는 장르 영화니까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영화 평론가는 없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편견이 존재한다.
<옥자>를 설명하려면 장르 소설의 규칙을 알아야 한다. 내가 대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SF소설은 이런 규칙을 훌륭히 갈고 다듬어 사용한 좋은 소설들이며, 봉준호 감독도 분명히 이를 받아들여 재해석 한 다음 자신의 영화에 적용했다. 하지만 독서가, 게다가 장르소설을 읽는 것이 평범한 일이 아닌 요즘에는 이런 장르 규칙을 완전히 이해한 평가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은 아마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리라 추측해본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독서가 평범한 취미가 되고 장르소설을 읽는 것 역시 독특한 일로 취급받지 않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도 한번 짐작해본다.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능동적으로 찾아서 즐겼으면 좋겠다(내 생각엔 책 읽으라는 잔소리보다는 훨씬 좋은 제안인 것 같은데 독자분들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능동적으로, 그 것이 만화건 장르소설이건 혹은 웹 소설이나 웹툰이건 간에 읽고 즐기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그런 분위기가 정착되면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도 더 쉽게 찾아낼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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