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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판단을 돕는 글이 좋은 글
이강룡(글쓰기 강사)  |  readmefi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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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6  22: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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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각을 넘긴 이에게 지금 어디냐고 물어 보면, ‘거의 다 왔다’고 대답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갈아타려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부류도 있다. 한쪽은 자기 판단만 전달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은 현재 상황을 전달한다. 자기 판단보다는 현재 상황을 알려 주는 편이 기다리는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하여,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분홍색 꽃을 찍은 영상이 첨부된 글 하나를 보았다. “지나가다 본 담벽에 있는 꽃인데 꽃도 예쁘고 잎들도 예쁘다. 이름이 뭘까?” 이때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 트위터를 ‘팔로잉’하게 된 계기는 “땅비싸리 꽃”이라는 재확인 트윗이다. 자신의 말과 글을 돌아보고 되짚으며 더 낫게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글 쓰는 이가 꼭 지녀야 할 덕목 같다. 새 소식을 얼른 전하려고 트위터에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가 노벨상을 받았다’라는 글을 오늘 올렸다면, 그가 쓴 책을 읽고 조금 더 발전시킨 내용으로 내일모레쯤 트윗 하나를 더 써 보면 어떨까.
“1차전에서 3골 차로 패한 팀이 2차전에서 뒤집은 예는 거의 없다”라고 쓴 축구 기사보다는 ‘··· 한 번도 없다’라고 쓴 기사의 질이 높다. ‘거의 없다’라는 구절에는 기자의 주관적 기억이 깔려 있지만, ‘한 번도 없다’라는 구절 안에는 통계 자료 검증이라는 객관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상황을 더 잘 판단하게끔 쓰려면 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19세기 초 인도네시아 발리 근처에서 어마어마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라고 적은 역사책보다는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은 해발 4천 미터가 넘었는데 1815년에 폭발한 다음 높이가 2851미터로 줄었다”라고 적은 역사책에 노고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법률> 편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쓰는 철학책보다는 “<법률> 편에만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쓰는 철학책에 더 많은 노고가 들어간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보다는 정확한 정보가 독자에게 유익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는? 칠레가 아니라 러시아다. 그러면 세계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는? 칠레가 아니라 브라질이다. 상식과 지식은 겹치기도 하지만 어긋날 때도 많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점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모비딕>에는 스타벅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더 낫게 쓰려면 항상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써야 한다. 어떤 여행작가가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육지에 닿을 무렵 소안도와 보길도가 보인다’라고 썼다면 ‘소안도와 보길도’라는 구절을 쓰려고 지리 자료를 일일이 뒤져 보았을 것이다. 그런 글은 미덥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해 한마디 하려면 적어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어디로 흐르는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책이나 지리책을 찾아보며 수메르 일대의 고대 도시들 위치까지 찾아보았다면 한 줄 더 적을 자격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노력이 한 문장 한 문장 시간의 켜로 쌓여 좋은 글 한 편이 완성돼 간다.
 글 한 편에 정성과 공을 들이는 작가는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뉴욕시는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다”라는 문장에는 ‘뉴욕’의 로마자 원어 병기가 필요 없지만, “포토시(Potosi)는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은을 수탈하던 곳이다”라는 문장에는 ‘포토시’의 원어 병기가 필요하다. 그걸 빼면 독자는 도시 이름을 ‘포토’라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에는 쓸데없는 요소가 없다. 그래서 독자가 주제를 파악하기도 좋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1회용품 사용을 줄여야한다”는 누구나 금세 쓸 수 있는 문장이지만,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만 사용한 지 6개월이 되었다”라는 문장 하나를 쓰려면 적어도 반년이라는 시간과 노고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깃든 실천은 독창적이면서도 훌륭한 글감이니, 그런 내용이 풍부하게 들어간 글과 책을 골라 읽으면 우리의 정신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쓰자.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관찰하고, 상식이라고 알려진 정보를 건강하게 의심하며 한 번 더 확인하자. 더 좋은 정보와 지식으로 채워진 글은 실천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렇게 개선된 우리의 삶은 그다음 글의 든든한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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