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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창조하는 손
박민영  |  flowerroot@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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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1  11: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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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사람이 있다. 정은영 미술감독은 1998년 <처녀들의 저녁 식사>를 시작으로 <4인용 식탁>, <광식이 동생 광태>, <1번가의 기적> 등의 영화에서 배경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함을 뿜어낸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의 흔적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미술과 영화가 그의 곁에 있었다

정은영 감독은 영화 미술보다는 연출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권유로 임필성 감독의 영화 <기념품>의 미술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미술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고. 정 감독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영화 미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으나 그의 삶에는 미술과 영화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사촌 언니들이 미술을 했고, 그 역시 학원 한 번 다녀 본 적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교 대표로 그림 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오곤 했다. 재능을 알아본 고등학교 선생님 덕 에 입시 미술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 달 간의 학원 생활 후 성균관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됐다. 또한 영화계에 종사하던 오빠의 영향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거장들의 작품 역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영상촌’이라는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 단편 영화 제작, 영화 스터디, 영화제 개최 등을 하며 영화로 가득 찬 삶을 살았죠”라며 정 감독은 영화에 빠져 살았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의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도 역시 그 시절을 떠올렸다. “피터 그리 너웨이 영화를 봤는데, 흰색으로만 혹은 빨간색으로만 공간을 구분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그를 ‘영화 미술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봤던 영화들이 모두 그 안에 쌓여 지금 밖으로 새로운 것을 끌어낼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이 되었다고.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정 감독은 영화 미술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경쟁 PT 당시 모두가 그림을 그려갔을 때, 그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실제로 다닐법한 회사나 생활할 것 같은 공간들에 직접 임상수 감독을 데려갔다. 남들과 다른 접근법은 임 감독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며칠 밤을 새우면서 모형을 만들고 독학을 하면서 영화 미술에 한 체계를 정립해 나갔어요”라며 그는 스스로도 열심히 살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영화 미술을 알아가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어두웠던 영화 미술의 세계를 밝혀 나가는 일은 육체적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아찔한 순간들이 그를 위협하기도 했다. 영화 <소름> 촬영 중 사고가 나서 머리에 유리 조각들이 박히는 사고를 당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소름>을 꼽았다. 이는 원혼에 쌓인 낡은 아파트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실제 철거 직전의 아파트를 손에 동상이 걸려가면서 직접 꾸몄다고. 이 과정은 정 감독 안에 축적된 것들이 가장 많이 발현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 앞에 놓여 졌던 극단적 상황들, 그로 인해 마음 속 자리하게 된 어두움과 끈적함, 처참함을 많이 꺼내놓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자연스럽고 솔직하 게 표현할 수 있었죠.”

정 감독은 영화 작업을 ‘암(暗)으로 가득한 지도를 들고 미지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길 찾기는 장인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마다 각자 이야기에 한 그림이 있는데, 미술감독은 그 그림을 가장 먼저 꺼내놓는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누워있는 글자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여기에 그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캐릭터와 스토리 분석에 힘을 실었다. 영화에 정서를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이에 기여도가 가장 높은 요소인 인물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고. 이것이 그가 ‘그 나름의 시나리오 해석’을 강조하는 이유다. “영화에서의 공간은 인물의 시간을 반영하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도우며 말없이 연기하죠.” 그래서 ‘마땅히 그러한 공간’이 되는 배경, 즉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스며드는 공간을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나는 ‘현재’만을 살아간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선택을 하세요.” 정 감독은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마다 설렘이 느껴지는 곳을 택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자신을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됐고, 그것이 지금의 정 감독을 있게 해준 것이 아닐까.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이 가지는 가치를 실감하기를 조언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일단은 많이 만나봐야 좋은 인연이 닿게 된다고. “사람 때문에 내 삶의 방향이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은 삶으로 증명된다. 미술과 영화를 가까이 하게 되고, 영화 미술을 업으로 삼게 된 데에는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누군가에게는 꿈인 정 감독에게 꿈이 무엇인지 묻자 “꿈에서 깨는 것이 내 꿈”이라며 웃었다. 지금 이 순간에 한 것을 최대한 느끼고 당장 행복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일희일비하자’는 다짐은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 는 삶을 이끌어가는 모토이다. 11월에 미술 감독으로서의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다는 그. 5년 만에 돌아온 그의 손길로 영화계가 다시 반짝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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