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밑그림을 열정으로 색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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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밑그림을 열정으로 색칠하다
  • 김수련
  • 승인 2018.04.03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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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디자이너 조명희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립적인 패션 세계를 구축한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가방 디자이너 조명희의 이야기이다. 핸드백 브랜드 ‘STORI’ 론칭, ‘루이까또즈’ 등 의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 강사 등 다양한 범위로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가는 열정적인 도전가, 조명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편집자 주>

-디자인과의 운명적인 만남

20대 후반까지 무용가로 활동했던 조명희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건강악화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용을 그만두고 슬럼프에 빠졌던 그에게 신발, 가방 디자이너였던 친언니의 조언이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저는 어렸을 때 미술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는데도 대회에 나가면 항상 상을 타왔다고, 제가 재능이 있다고 조언해 주더라고요.” 그렇게 그는 당시 한국 패션업계에서 인정받았던 신원그룹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디자인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단순히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도전했던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빠르고 열정적으로 그를 매혹시켰다. 그러나 28살의 적지 않은 나이와 디자인 비전공자라는 사실 때문에 함께 입사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적은 월급과 진급에서의 제한 등 어려움도 많았다고. 조 디자이너는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돈을 많이 못 받는 것보다 디자인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원그룹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모든 디자이너의 꿈이었던 이신우 컬렉션의 디자인 실장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국내 1세대 가방, 액세서리 브랜드의 런칭과 성공을 이끌어냈 다. 하지만 쌓여가는 성과에도 마음 한편의 공허함과 목마름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 “당시 우리나라의 디자인 현실이 너무 답답했죠. 일본의 잡지에 실린 액세서리를 그대로 모방하는게 업계의 관행이었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했는데도 회사 임원진들의 반응은 싸늘했어요.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결국 그는 한국에서 이룬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유’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영국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디자인 인생 2막을 열게 됐다.

 

-사람을 담은 창의적 디자인

15년간의 영국에서의 생활은 그가 갈망했던 것을 모두 채워줬다. 조 디자이너는 틀에 박히지 않은, 하고 싶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곳으로 유학 당시의 영국을 떠올렸다.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제 디자인을 어필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부족했던 영어를 배우게 됐어요. 주변에 미술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도 도움이 됐죠.” 주변의 만류에도 유학을 선택했던 그의 선택은 옳았다고. 결과적으로 조 디자이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스쿨 세인트 마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디자인 공부를 마쳤다. 그는 세인트 마틴의 졸업과 동시에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조 디자이너는 사업초기의 과정을 회상하며 “먼저 영국에 핸드백 샵을 열었고, 파리와 런던 등 패션위크에서 제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건축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들 사이에서 저와 제 브랜드 STORI의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라 말했다. 이처럼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과 사업의 성공 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독창성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의 디자인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독창성은 경첩, 누빔, 자수, 한지 등 한국적인 소재 덕분이다. 그는 “가방 디자인에서 만지고 싶은, 저 절로 손이 가는 ‘소재’의 선정을 가장 최우선에 둬요. 그래서 한국의 전통적인 공예 요소들이 저에게는 너무 유혹적이었죠”라며 자신이 해온 디자인의 특징을 소개했다. 더불어 그의 가방은 물건을 담아내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한다. “간혹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디자이너들이 있어요. 디자인도 어차피 사람에게 선택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거죠.” 조 디자이너는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해낼 수 없다”며 평소 인문학 공부를 통해 쌓아온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이해가 디자인의 또 다른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디자인과 마케팅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총 감독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두 조명희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끊임없이 꿈꾸고, 노력하고, 실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꿈꾼 것은 모두 현실이 되었거나 되고 있다”며 말문을 연 그는 “가방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아요. 먼저 상상을 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활동이죠”라며 지금까지 자신이 현실로 바꾼 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도자의 기준에 의해 창작에 제한을 받는 한국의 디자인 교육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만의 창의성이 인정받는 환경을 꿈꿨다. 계명대학교에서 7년째 학생들을 만나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조 디자이너는 “하지만 기존 대학 제도에서 제가 제시하는 방향을 이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나주에 공예와 디자인을 접목시킨 레지던스형 연구소를 짓고 있어요”라며 이 연구소가 예술가들이 함께 지내며 다양한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지금까지와 차별화된 공간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대학생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꿈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조 디자이너는 "어느 날 갑자기 되는 일은 없지만, 꿈을 꾸고 열정을 쏟는다면 못 해낼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자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지, 그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기억되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이 답변을 통해 그를 자신만이 가지는 개성을 바탕으로, 주변의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열정적인 도전가’라고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물질과 혁신만이 강조되는 현재 사회에서 사람과 전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오늘도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조명희 디자이너. 앞으로도 그가 현실로 만들어낼 수많은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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