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묵묵히 걸어가는 반주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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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묵묵히 걸어가는 반주자를 만나다
  • 최원규
  • 승인 2018.04.29 2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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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김청만
 

국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청만’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소리꾼도 관현악 연주자도 아닌 북을 다루는 고수다. 김청만 선생은 제5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로서 현재 국악 음반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국악인으로 알려졌다. 명성을 좇기보다 그저 반주자로서 한국 전통 장단에 인생을 바쳐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반주는 멈추지 않는 공부

고수(鼓手)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로 인정받는 김청만 선생은 먼저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되물었다. 일고수 이명창이란 판소리에서 북과 추임새로 흥을 돋우는 고수가 잘해야 창을 하는 소리꾼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고수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김 선생은 “모든 연주자가 가장 마음 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고수의 임무”이고 “좋은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악에는 판소리뿐만 아니라 현악, 관악, 무용 등 수많은 갈래가 있다. 반주자는 자신의 분야 안에서 실력을 갈고 닦는 연주자와 달리 그 모든 음악에서 무엇을 어떻게 반주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김 선생이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서 한국의 모든 음악과 타악기를 두루 섭렵해야 한다고 말한 까닭이었다. 그는 6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반주자로 살아온 명인이며 공연 전에 따로 소리꾼과 맞춰보지 않아도 될 만큼 통달한 고수다. 그렇게 현시대 한국 장단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김 선생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며 공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평생에 걸쳐 예술이란 그저 많이 듣고 많이 해보는 것이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방법뿐이었다. 그 정도로 좋은 고수가 되기란 어려운 길이기에 ‘일고수’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설장구 치던 소년의 열정

김 선생은 1946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교육은 받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빛을 발했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즐거울 때나 상갓집에서나 징, 꽹과리 치며 놀고 그랬거든.”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농악을 접하고 그에 매료됐던 김 선생은 장단을 귀로 듣고 따라치면서 스스로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우유 깡통으로 장구를 만들어 치고 직접 소년 농악단을 만들기도 했다. 설장구로 유명한 최막동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다 1965년 임춘앵여성극단에 악사로 들어가며 김 선생은 정식으로 북을 치는 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1988년 한국 전통 음악의 종갓집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립국악원에 들어가면서 김 선생은 여러 국악 명인들과 온갖 종류의 국악을 접할 수 있었다. 김 선생은 자신이 국립국악원에서 타악기로 시험을 보고 들어온 사람이 자신이 처음이고 제1호였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국립창극단에서 8년 동안 있을 때 아쟁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타악기로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장단 공부에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고수의 길을 걸어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을까. 김 선생은 과거 음악을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요즘이야 다 부모들이 학교에 수업료를 주고 하지만 우리 시대는 그런 것이 없었잖아.” 김 선생은 1980년대 당시 청계천에서 산 중고 카세트를 들처매고 스승을 찾아가 녹음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들은 지금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렵게 공부를 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 고수가 본 국악의 현주소

그는 요즘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등의 업적을 남긴 지난 선배들에 비교해 최근에는 제대로 국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그는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도 알고 당장 배가 고픈 것도 알지만 재능있는 젊은 국악인들이 자주 방송 등으로 눈을 돌리며 국악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 선생은 “북이면 북, 장구면 장구, 소리면 소리. 엉뚱한 곳으로 새지 말고 제대로 전통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서양 음악보다 국악을 배우는 것을 더 힘들고 어렵게 여기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관심이 있어도 망설이다가 4, 50대가 넘어서야 늦게 배우러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판소리를 보러 오려는 젊은 관객들에게도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물론 고수가 추임새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추임새만큼 소리꾼을 신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소리꾼이 힘이 없을 때도 ‘얼씨구! 잘한다!’라고 하면 힘이 불끈 솟을 것 아니야. 그런데 요새는 멍하니 앉아서 문장 가사나 읽고 있지.” 김 선생은 젊은 관객들이 추임새를 하는 법이나 공연 내용에 대해 미리 어느 정도 알고 온다면 판소리를 더욱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역사에 남을 명창들과 세계적인 공연을 함께 하며 실력을 인정받아온 김 선생에게도 단연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연습 안 하고도 이렇게 잘 맞은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라는 말이었다. 평생을 국악 반주자, 고수로서 바치고 노력해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의 기쁨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고수 김청만 선생의 열정적이고 우직한 삶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게 될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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