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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이 불러온 공포, 진정한 괴물로 거듭나다
이유진  |  maymay9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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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6  23: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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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를 이어붙여 만든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은 프랑켄슈타인 박사

머리에 나사가 박힌 채 느리게 움직이는 초록색 괴물의 이름을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릴 것이다. 하나의 고유명사로 등극한 이 괴물을 창조한 박사와 그의 파멸을 그린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폭풍우가 치던 밤 탄생한 이후, 200년 간 많은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함과 동시에 수많은 지적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을 알아낸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죽은 자의 뼈로 만든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실제로 책이 출판된 19세기 유럽에서는 갈바니라는 과학자가 개구리의 시신에 전기를 흘려보냄으로써 그 근육이 수축하며 움직이는 현상을 통해 전기와 근육의 상관성을 밝혔다. 여기서 파생된 ‘갈바니즘’은 과학을 통한 인위적 조작과 이에 따른 자연의 통제를 논하는 데 까지 이어졌다. 즉, 『프랑켄슈타인』은 괴기소설이기 이전에 천재적인 작가가 상상력과 결합해 적어내려 간 당시의 기록인 셈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당시의 영국처럼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자연의 섭리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그러나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내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창조물을 버린 박사를 통해 『프랑켄슈타인』은 자연의 섭리를 넘어섰을 때 발생하는 미지의 두려움을 표현한다. 당시 사회의 통념을 반영하되, 그 오만이 불러올 수 있는 비극으로 일종의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러나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은 원작이 갖는 의미를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각적인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은 어눌한 언어를 구사하는 초록 피부의 거인으로 원작의 괴물을 사실상 재창조했다. 영화 속 괴물은 짐승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며 공포를 자아내도록 연출됐다. 그러나 원작에서 시사하고자 했던 공포의 대상은 괴물 자체가 아니다. 원작에서 의도한 공포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마음대로 다룸으로써 불러올 수 있는 위험에서 기인한다. 창조물의 흉측한 외양에 놀라 그를 버린 인간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구를 원하는 괴물, 선과 악의 기준이 뒤섞인 혼란 속 던져진 묵직한 질문은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물음을 던지고 한탄하는 인간과 괴물의 독백을 들어내고 단순히 괴물이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영상을 나열함으로써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작품 전반에 깔린 철학적 고찰을 빛바래게 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주변인들이 하나둘 살해될 때,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목을 조이는 건 괴물이 아닌 그의 오만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서문에서 작가는 “독자가 두려움에 주변을 살피고, 맥박이 빨리 뛰게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언급했다. 얼음만이 가득한 땅에서 최후를 맞은 박사의 창조물과 달리 그녀의 창조물은 소설과 영화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많은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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