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 사람과사람
방향은 올곧게, 삶의 균형을 잡아라
김용간  |  kyk6582@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31  11:21:4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흔히들 글솜씨와 무예를 두루 갖춘 인물에게 ‘문무겸비’라는 표현을 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사고가 깃들듯 ‘문무겸비’에서 ‘문’과 ‘무’는 서로를 의지한다. 만약 현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뛰어난 소설가이자 정통검도를 단련하며 대한검도회의 상임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유재주 작가가 해당할 것이다. 『초한지』, 『열국지』 등 중국 역사소설을 평역하는 동시에 ‘한얼검도관’을 운영하는 그를 만나봤다.

싸움밖에 모르던 아이가 소설에 빠져들다

“매일같이 싸우는 아이, 그게 저였습니다.” 유년시절에 대해 질문을 하자마자 유 작가는 이렇게 입을 뗐다. 아버지가 군인이신 탓에 잦은 이사를 겪어야 했던 불안정한 유년시절과 누군가 시비를 거는 사람이 생기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유년시절 공부와 책은 그에게 멀기만 했다. 그가 처음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쉬는 시간마다 삼국지를 읽는 같은 반 친구를 보고서다. 순수하게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한 삼국지는 수호지와 다른 소설들로 이어졌고, 어린 소년에게 영웅들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 넣을 만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교지에 소설을 싣는다는 공고를 보게 된 것이 제 첫 작품의 시작이에요.” 교지에 글을 올리고픈 욕심에 통학하는 열차 안 풍경을 묘사하는 소설을 쓴 것이 그의 등단작이다. “추운 겨울에 기차 안에서 웅크린 사람, 곤히 잠이 든 사람 등 평소 보던 사람들의 모습에 관해서 썼죠.” 그의 첫 작품은 당당히 교지에 실렸고 그가 문예부에 들어가 소설가의 꿈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문예부에 들어가니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글에 대한 재능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활동했죠.” 그러나 그의 길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선배의 권유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현대 종합 기획실에 들어가게 됐어요. 근데 너무 바쁘더라고요. 6개월을 다녔는데 단편소설 한 편도 못 읽을 만큼 바빴어요.” 부모님의 반대 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캠퍼스로 돌아온 그는 습작을 써 내려가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소설을 쓰겠다는 것만으로는 학과 교수님도, 부모님도 설득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조건을 붙였죠.”

삶의 은인, 검도와의 만남

당시 <조선왕조 500년> 드라마의 소설화 작업을 계획하던 신봉승 프로듀서의 부름으로 마포 역사문화연구소에서 작업하며 소설화 작업을 하던 그는 1984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그의 단편 「겨울비」가 당선되어 마침내 등단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소설이 생계가 돼야 한다는 부담은 그에게 더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생계를 위해선 단편소설을 써야 하는데 저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계속 그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우울증을 겪게 되고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지요.” 그러던 중 스포츠 신문 구석에서 우연히 접한 검도 사진이 일종의 도피처로 다가왔다. “현실 도피였어요. 진짜 현실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고 다른 해결방안으로 검도를 시작하게 됐어요.” 소설 활동을 잠시 멈추고 검도에만 열중하는 기간을 가지자 다시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검도를 시작한 이후, 습작하던 것 처럼 새로운 열정으로 집필 활동을 다시 시작한 그는 첫 장편소설 『북국의 신화』를 완성했으며 이후 80년, 90년대 전국사회인검도대회 등 각종 전국대회를 석권하면서 제2의 직업으로 검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검도는 저에게 은인입니다.” 다시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게 해준 검도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후 아무리 소설 쓰는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검도에 할애하는 시간으로 정해두었다고. 소설 때문에 검도를, 검도 때문에 소설을 배신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본업은 소설이더라도 삶에 있어서 그 균형을 이루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그는 전했다. 그에게 소설가와 검도인으로서의 덕목이 같은지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다르다고 답했다. “소설은 제가 생각하는 이야기가 독자들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검도의 수양은 내면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둘의 조화를 찾는 것이 중요하죠.” 그 둘의 영역은 다를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그의 장편소설 『검』과 같은 경우, 검도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검도와 소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영역이 ‘유재주’라는 인물의 삶을 지탱하는 두 축이 됐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고 늘어지는 것, 집념에 대하여

역사소설을 집필하면서 유 작가는 자료 분석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여러 자료가 있다 보니 일일이 대조하고,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한문과 번역본이 있었는데 번역본을 주로 읽고 번역본이 이상한 부분에서 한문을 찾았죠.” 특히 『열국지』가 춘추전국시대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다 보니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고. 그는 『열국지』를 집필하는 과정을 ‘물길을 텄다’고 표현했다. “기존의 『열국지』에서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사건들을 밋밋하게 나열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자료에 있는 사실을 전하되, 흥미로운 사건을 위주로 재구성해 사건과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13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막상 집필 기간은 고작 1년 반이 채 되지 않았다는 말에서 단기간에 그가 얼마나 작품에 몰입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또 한 번 검도에 대한 소설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권 정도 되는 단편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일단 ‘달관’이라는 제목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요” 그는 집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검도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집필 활동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앞서 말한 ‘조화’를 찾기 위한 과정일까. 끝으로 유 작가는 대학생들에게 꺾이지 않는 자세를 강조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 번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절망과 실연 등도 한 번 극복하고 나면 무언가를 성취하기가 훨씬 쉬워지죠.” 균형이 빚어낸 끈기와 집념,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원동력이 아닐까.

김용간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