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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목숨에 순위를 매긴다면
구호정  |  hojeong46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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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4  22: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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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향한 그들의 처절한 경쟁이 남긴 것은 발가벗은 이기심 외엔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노인과 아이, 임산부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순간 이 닥쳐와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상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화 <써클>은 어떤 재난 현상도 강력한 무기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점차 본심이 드러나는 인간의 원초적 면모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서로 연관 없는 사람들의 무리, 원 중심에 놓인 의문의 발사체에 의해 2분마다 누군가가 죽는 시스템. 영화는 이 흥미로운 두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물들은 공포와 의문에 휩싸인 채 이 기괴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이 알아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몇 분마다 사람이 죽고 그 죽음은 비밀투표에 의해 다수결로 결정된다. 둘째, 동표가 나오거나 아무도 투표를 하지 않으면 불가항력이 무작위로 목숨을 앗아간다. 셋째, 스스로 투표할 수 없지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남으로써 자살을 택할 수는 있다. 고민 끝에 누군가 탈출 방법을 모색할 시간을 벌기 위해 죽을 사람을 미리 정하자는 의견을 내자 목숨의 가치를 매기는 온갖 기준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연장자, 범죄자, 독신부터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 죽음의 과녁은 점차 과감해지고 인물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임산부가 생존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에 투표하지 않고 희생하겠다던 한 청년의 기막힌 배신으로 막을 내린다. 약속을 어긴 그는 임산부와 함께 남아 있던 아이까지 모조리 사지로 내몰고 배 속의 아기에게까지 서슴없이 죽음의 표를 던짐으로써 최후의 1인이 된다.

 제목처럼 영화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해 마지막까지 같은 구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의 인물들은 서로를 추궁하고 편을 가르며 끝내 감정적으로 투표에 임하기도 한다. 이같이 매 장면에서 나 타나는 인간의 참모습은 잔인하고 허탈하다. 목숨이 일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체면 따윈 버려지고 인간 본성이라는 발가벗은 진실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혐오와 선입 견으로 점철된 이기심과 일말의 양심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인물들이 빚어내는 가치의 충돌을 보는 사람도 자신의 가치관이 정말 옳다고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영화는 결국 이기심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에 탄식을 내뱉 는 관객들은 결말을 곱씹으며 곧 영화의 내용이 결코 픽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의 힘으로 사람이 죽고 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가상의 설정만 사라지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 <써클>은 몇 가지 허구적인 설정으로 현실이 아닌 것처럼 포장했을 뿐 사실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현실을 구현해내 허를 찌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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