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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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삶
  • 오세한
  • 승인 2018.09.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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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기온을 보나 폭염일수를 보나, 여러모로 전례 없던 끔찍한 여름이었다. 여름은 바쁘게 오가며 생활하고 노동하는 우리 모두를 힘들고 땀 흘리게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8월 초 무렵, 쌍용차 서른 번째 희생자 조문을 위해 대한문 분향소를 찾았다. 농성장을 24시간 내내 지키는 조합원들은 선풍기도 없이 부채 몇 개로 여름을 온몸으로 나고 있었다. 밀양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부터 장위동, 파인텍까지… 거리와 공중에서 사계절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한여름의 공기는 한없이 묵직한 데 반해 이들의 존재는 끝없이 가볍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나의 일 분, 그들의 일 분은 너무나 다르게 지나간다.

 더위가 조금은 가신 8월 중순, 새벽 세 시까지 학교 앞 도로에서 뭔가를 설치하는 사람들을 보며 든 감정은 야속함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사람을 병들고 죽게 하다가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가 야속하고, 밤잠을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삶들이 슬프다. 계절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극단을 치닫는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생각할수록 미운 건 날씨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 몇 명 안 죽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죽어가는 이들을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성경의 구절처럼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는’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일하지 않아도 배불리 먹고 풍요롭게 살지만, 대부분은 해가 뜰 때 출근하고 깜깜해질 때 퇴근하는 삶이라도 살기 위해 분투한다. 일할 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새벽까지 육체노동에 매달리고, 일 빼면 남는 게 없는 삶을 권리랍시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정확히는 일할 권리가 아닌, 돈 받을 권리가 있다. 어떤 사람이든 생존을 보장받아야 하고,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고 포드주의가 관리했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설파한 바로 그 노동윤리가 이제 박살 날 위험에 처해있다. 아직도 헌법은 근로를 강제하고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게 하는 세상이지만, 노동은 분명히 버림당하고 있다. 일자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을 하며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산다.

 국가가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일정한 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 ‘기본소득’은 이미 가치를 잃고 있는 노동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를 과감하게 폐기하는 기획이다. 우리의 삶이 목적이 노동이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이다. 무엇보다, 그놈의 돈 때문에 거리에 내몰리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이제 그러지 말자며 건네는 손이다. 모두에게 돈을 준다니 비현실적인 소리 같지만, 돈 때문에 힘든 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한 번쯤은 상상해보시라. ‘매월 30만 원이 생기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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