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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으로 고발한 자본주의의 폭력성
김현비  |  hyunbeekim@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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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2  23: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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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롱과 줄리가 지붕 위에서 톱과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푸줏간 주인이 칼 가는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리는 긴장감 도는 상황에서, 한 남성이 온몸에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로 쓰레기통에 숨어 기다린다. 쓰레기차를 타고 달아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도중 갑자기 쓰레기통 뚜껑이 난폭하게 열리더니, 음산하게 웃는 푸줏간 주인이 그를 커다란 고기 칼로 내리친다.

영화 원제인 ‘델리카트슨(delicatessen)’은 가벼운 기호식품을 뜻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곧 그 ‘가벼운’ 기호식품이 인육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기를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아파트 주인이자 인육 공급처인 푸줏간 주인과 고기를 얻기 위해 그에게 복종하는 세입자들, 인육을 거부하고 지하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지하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뤼종과 줄리 이렇게 세 부류가 등장한다. 푸줏간 주인과 세입자들은 임대 광고를 보고 들어온 새로운 입주민을 고기로 삼으며 살아간다. 서커스 광대 출신인 뤼종 역시 과거에 임대광고를 보고 찾아와 고용된 아파트의 잡일 인부였다. 푸줏간 주인 세력이 그를 죽일 작전을 세우자, 뤼종과 사랑에 빠진 푸줏간 주인의 딸 줄리는 그를 구하기 위해 지하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뤼종을 죽이는 계획이 번번이 실패하자 다급해진 사람들은 이웃 할머니의 고기마저 제물로 삼는다. 자신의 어머니의 고기를 배급받으면서 딸과 사위가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악몽과도 같은 모습으로 연출된다. 또한 극 중 우울증을 앓던 한 세입자가 환청에 시달리며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일의 배후에 다른 세입자의 살해 계획이 있었다는 점이 발각된다. 이는 과연 사람들이 인육에 어디까지 광기를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고기=돈’인 세상에서 절대 권력을 장악한 푸줏간 주인은 우리 세계의 자본가를 상징하는 듯하다. 세입자들은 푸줏간 주인이 만든 인육을 소비하는 소비자이자 동시에 식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상반되는 오락적이고 독창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푸줏간 주인과 세입자 플리쉐가 격한 사랑을 나눌 때 나는 침대 용수철이 규칙적으로 튕기는 소리에 맞춰 각자 바느질, 페인트칠, 첼로 연주를 하는 세입자들의 행동은 단순노동을 형상화하는 기발함을 보여준다. 또한 다 쓰러져가는 침대를 고치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나, 뤼종이 서커스 광대로 일할 당시 췄던 띠까띠까 와끄 춤, 과장된 세입자들의 캐릭터 등은 익살스러움을 극대화한다. 노랗고 탁한 색채감과 감독이 즐겨 이용하는 어안렌즈로 왜곡된 화면은 작품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을 부각한다.

인육이 기호식품으로 여겨지는 기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뤼종이 아파트 아이들에게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장면이나, 모든 싸움이 끝난 뒤 줄리와 뤼종이 지붕에서 연주하는 첼로와 톱의 합주를 보며 관객은 묘하게 치유되는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이 점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동화적이고 아름다운’ 컬트영화라는, 다소 모순적인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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