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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감독에서 포근한 야구의 아버지로
이재효  |  leejaehyo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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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22: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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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프로야구 팬이라면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을 일궈낸 ‘이광환’이라는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은 그를 수십 년간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한 '전설'의 서울대 야구부 감독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현장에서 떠나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해 힘쓰는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 및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만나보았다.

▲ 야구 소년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까지
그가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한 때는 무려 195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1살이었던 그는 국민학교 야구대회에 출전하면서 야구인의 길을 걷게 된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그는 자신의 모교였던 서울 중앙고 야구부 상황이 어려워지자 이를 돕기 위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일본과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나 선진 야구에 눈뜨게 됐다. “그 당시 80년대의 한국 야구는 아마추어나 다름없었다”고 강조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 일본과 미국의 선진 야구를 정착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시기가 그의 지도자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선진 야구를 외국에서 배워왔지만, 그의 야구 철학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구단이 없어 그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고. 하지만 1992년에 감독을 맡게 된 LG 트윈스는 그를 믿고 기다려줬다. 그 결과 1994년 LG 트윈스는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투수 분업화를 도입해 한국 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나니 그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보고 왔던 야구 박물관이 떠올랐다. 작은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세워져 있는 야구 박물관에 그는 큰 감격을 하게 된다. 한국에도 이런 야구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94년 우승 이후 LG 선수단에 프로는 돈보다도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야구 물품을 기증받아 제주도에 국내 최초로 야구 박물관을 만들었다. 점점 규모가 커져서 현재는 서귀포시에 기증한 상태라고. 이후 현장에서 은퇴한 그는 아마추어 야구 인프라 향상을 위해 12년째 KBO 육성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저 나쁜 소리만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어딘가 특별한 서울대 야구부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맡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2010년 KBO와 서울대학교가 협의해 서울대학교에 지도자 교육을 맡는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설치한다. 이 감독은 이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이 되면서 서울대학교에 파견을 나갔는데 서울대학교 야구부가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이 안쓰러워 장비를 지원하는 등 도움을 주다 감독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서울대 야구부는 다른 야구부와는 달리 승리를 거두기 힘든 야구부이다. 이는 타 대학 야구부는 프로 선수들로 이루어졌지만, 서울대 야구부는 오로지 아마추어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야구부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야구 실력이 아닌 공부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야구부에서 학점이 3.5를 넘지 않으면 야구부에 퇴출당한다”며, 서울대 야구부원들은 대부분 야구를 취미로 하기 위해 들어왔고 앞으로 야구를 직업으로 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원들이 공부를 우선순위로 둬야 함을 강조했다.
이 외에 또 다른 서울대 야구부의 특징은 협동심이라고 밝혔다. 야구를 너무 하고 싶어 한다 해도 협동심이 부족하다면 야구부원으로 받지 않는다고. 희생번트나 희생플라이가 존재하는 야구는 협동심을 배우기 가장 좋은 운동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여러 기업에서도 서울대 야구부원을 스카우트해간다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을 다니고 있고 베이스볼 아카데미도 서울대에서 철수해 서울대 야구부 아이들을 잘 봐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현재 후임 감독을 구하고 있지만, 보수 없이 자신의 돈을 써가며 지도해야 하므로 좀처럼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걱정 섞인 한숨을 쉬었다.

▲ 야구계 원로가 말하는 야구란?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았다. 이번 아시안게임 당시 불거진 리그 중단 논란도 아마추어 대회에 프로 선수들을 내보내기 위해 리그를 중단시키는 일정을 만든 KBO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 선수들도 돈보다는 야구 자체를 사랑하고 프로 의식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가 아마추어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도 흥미를 끌 만하다. 어릴 적 이 감독이 살던 대구 남산동은 우범지대였다. “야구를 하지 않았으면 불량아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한 그는 야구가 인생에 있어 정말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의 KBO 육성 위원장 자리를 맡아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도 그때의 고마움 때문이라고.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을 묻자 그는 ‘인내심’이라고 답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배운 것이 바로 인내심이라 언급했다. 그 인내심 덕분에 한국 프로 야구에 자율야구와 투수 분업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고 했다. 선수를 길러낼 때도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신인이었던 김태균과 이범호를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기용했다. 결국 김태균은 그해에 20홈런을 치면서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이범호도 재능을 꽃피워 국가대표 3루수로 성장했다. 우리 히어로즈 감독 당시에도 강정호를 적극적으로 기용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유격수로 성장시켰다. 이 감독은 “그때 강정호를 기용한다고 팬들이 엄청나게 욕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에게 추후 프로 현장에 복귀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지금은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나이는 아니고 하나씩 줄여나가는 나이다”고 말하며 잔잔히 미소를 남겼다. 인터뷰 내내 푸근한 할아버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광환 감독. 이제는 인생의 찬란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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