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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향한 광기 어린 도전
박지영  |  jiyo030@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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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4  00: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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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곧장 달려와 무대에 오른다.

● 개봉연도: 2015년
●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 상영시간: 106분

 

영화 <위플래쉬>는 재즈 밴드의 드러머였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그가 끊임없이 고뇌해왔던 예술에 대한 의문이 담겨있다.

주인공 앤드류 데이먼은 일류 드러머의 꿈을 안고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현실은 평범한 학교 밴드에 소속된 평범한 학생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은 아버지나 친척들에 의해 번번이 무시되곤 한다. 그때, 앤드류의 앞에 교내 최고의 밴드를 담당하는 플렛처 교수가 나타난다. 다정한 말에 회유돼 그의 밴드에 들어선 앤드류는 폭언과 폭력을 쏟아붓는 플렛처에게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달콤함에 젖어 피가 날 때까지 드럼을 연습한다. 학교 경연대회 날 악보를 잃어버린 메인 연주자를 대신해 ‘위플래쉬’를 멋지게 연주한 앤드류는 그 자리를 꿰찬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공연장에 달려갈 정도로 그 자리에 집착하는데, 플렛처는 부상으로 인해 연주를 망쳤다며 그를 밴드에서 내쫓는다. 앤드류는 이에 대한 복수로 플렛처의 가혹행위를 고발해 해임시키고 그에게서 벗어나지만, 어딘가 허망함을 느낀다. 결국 앤드류는 다시 플렛처와 대면하고 카네기 홀에서 ‘위플래쉬’를 연주하라는 제안을 받아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무대에 선다. 플렛처의 계략에 의해 밴드는 다른 곡을 연주하지만, 앤드류는 오히려 ‘캐러밴’이라는 곡을 홀로 연주하며 무대를 장악했고, 연주를 막으려던 플렛처는 이내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연주자의 탄생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 지휘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가족에 대한 욕까지 서슴지 않고 퍼부으며 최고의 연주를 강요하는 플렛처 교수의 모습에서는 스승의 형상보다는 완벽을 추구하는 잔혹성만이 돋보인다. 괴팍하고 예민한 플렛처의 지도에 순종하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앤드류는 일견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멤버들이 교수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것과는 대조되게, 앤드류는 결국 교수가 지향하는 바에 이끌려 같은 목표점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게 된다. 이처럼 플렛처 교수는 앤드류의 완벽을 향한 욕망의 상징이다. <위플래쉬>는 예술을 즐기려는 욕구와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완성하려는 욕구 사이에 선 예술가 내면의 갈등을 섬세히 묘사한다. 앤드류는 후자의 편에 선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플렛처의 계략에 빠져 절망하는 그를 안아주기 위해 아버지가 다가올 때, 앤드류는 아버지의 품을 거부하고 플렛처 교수가 서 있는 무대에 다시 발을 내디딘다. 이후 그가 보여주는 광기 어린 ‘캐러밴’ 연주는 정말 완벽에 가까우며,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장마저 뜨겁게 뛰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 모습에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관객석 역시 점차 어두워지면서 끝내 화면에는 앤드류와 플렛처 둘만이 남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완벽한 예술과,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무너트린 예술가를 동시에 목도한다.

플렛처가 추구한, 그리고 앤드류가 따르는 이상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파괴할 만큼 폭력적이고 기괴하다. 과연 일종의 경지를 넘어 이상에 도달한 두 ‘천재’들을 우리는 동경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영화는 예술의 완성을 위해 인간의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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