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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으로 바라보고 '기억'으로 바꾸다
박주희  |  djssl0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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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2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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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글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올해 작가 데뷔 10주년을 맞이했으며 그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소재원 작가이다. 그는 데뷔작 『나는 텐프로였다』를 포함해 총 12권의 책을 펴냈고,  『소원』과  『터널』 등 그 중 일부는 영화화돼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MBC 토요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를 성공적으로 집필하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전부 섭렵한 작가가 된 그를 만나봤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펜을 잡은 소년

작가가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소재원 작가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다섯 가구가 공동으로 화장실을 쓰고, 다섯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가족 전체가 살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가 도망을 가셨고, 당신을 찾을 목적으로 유명해지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그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스무 살 때 처음으로 집필한 소설은 데뷔작 『나는 텐프로였다』가 아닌 『터널』이었다. 하지만 모든 출판사에서 더 흥미로운 소설을 요구하면서 『터널』의 출판을 거절했고, 흔하지 않은 소재의 소설을 쓰려고 하던 중 탄생한 것이 『나는 텐프로였다』였다고. “사실 제가 지향하는 느낌의 소설은 아니었어요. 그저 작가가 되고, 유명해지기 위해 출판사가 원하는 대로 급하게 쓴 소설이 운 좋게 출판이 된 거죠”라며 당시 아쉬웠던 마음을 전했다. 작품을 집필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경험으로 소 작가는 다시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꼽았다. “하루에 한두 끼 먹는 게 감사했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서 살았던 경험이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게 해줬어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많이 쓸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10년 동안 총 12권의 책을 펴낸 그도 매번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매번 이전 작품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하지만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얻은 교훈은 슬럼프는 결국 쓰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쓰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던 거죠.”

 

기록을 남겨 사람을 위로하다

소재원 작가는 최근 MBC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의 집필을 무사히 마쳤다. 드라마 집필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제 작품을 사랑해준 독자들에 대한 보답으로 독자들이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도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날』이라는 소설을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고, 드라마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는 드라마 집필을 하면서 소설을 쓸 때는 혼자서 고민하면 됐지만, 드라마의 경우 수백 명의 스텝들과 배우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그 책임감이 더욱 막중했다고 덧붙였다.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에 대해 묻자 그는 이번에 출판할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소설을 대중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말 ‘우리’에 대해서 진솔하게 적은 소설이에요. 비록 우리의 삶이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사실 굉장히 고결하고, 우리만큼 빛나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한때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위원에 있기도 했던 소 작가는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고도 불린다. 이에 대해 그는 “아무도 대변을 안 해주니까 저라도 그들에 대해서 써야 했어요”라며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도움받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서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썼던 것 같아요. 그게 작가라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작가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그는 한 치의 고민 없이 ‘공감 능력’을 꼽았다. 그는 예술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즐기고, 마음의 위안과 감정의 충족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글을 쓰려면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모임도 자주 하고 그들의 고민도 많이 들어봐요. 그렇게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봐야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도 쓸 수 있고요.”

 

 

서로의 기억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날이 오기를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재원 작가는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고했다. 그는 밝게 웃으며 “드라마 각본상을 타고 싶고, 새로 집필하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15% 이상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또 해외에서 상을 타보고 싶어요”라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많이 비추고 싶다고 덧붙였다. 훗날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는 굳이 자신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했다. “대신 제가 썼던 작품들에 나왔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만큼은 오래도록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나 제 작품은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지만 조두순이라는 사람이 내년에 출소하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해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소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기억이라는 것은, 진짜 기적을 만들어요. 우리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때 사회는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삼풍백화점 사고나 성수대교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았다면 세월이 흘러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재난이 과연 발생했을까를 고민해봐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힘이 없을지 몰라도 기억과 아픔을 간직하는 것만큼은 세상을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하다못해 검색 한번, 댓글 하나 남기는 30초가량의 짧은 순간이라도 그것이 모인다면 언론이 움직이고, 정부가 움직이며 결국 세상이 바뀔 수 있어요”라며 다시 한번 기억이 가진 힘을 일깨웠다.

 

 

박주희 기자 djssl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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