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손으로 스스로 세우는 ‘우리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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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손으로 스스로 세우는 ‘우리들의 천국’
  • 박지영
  • 승인 2019.03.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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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 문학과지성사 │ 1만 3,000원

 『당신들의 천국』은 한국 관념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청준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6천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는 소록도에 병원장으로 취임한 인물과 섬의 주민 사이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백헌 대령은 소록도에 새로 부임한 병원장으로 한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한 인물이지만, 전 원장에게 배신당했던 주민들은 그를 계속해서 경계한다. 이상욱 보건과장은 전 원장이 소록도에 천국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환자들을 착취해 세웠던 ‘동상’으로 그를 데려가 천국을 세우는 환상에 젖지 말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조백헌은 자신이 전 원장과는 다르다며, 불신과 무력감이 가득한 섬을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나환자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신뢰를 쌓고, 득량만을 간척지로 개척해 섬에서 나갈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터전을, 새로운 천국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상욱과 황 장로는 여전히 그에게 회의적이다. 황 장로는 진실하고 정당한 힘의 질서가 서기 위해서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사랑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또한 소록도의 천국이 소록도 밖의 천국과 구별될 때, 그것은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병원장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결국 조백헌은 자신 역시 전의 원장들처럼 지배자로서의 권위, 즉 동상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선한 의지에서 행했을지라도 위로부터 아래의 하향식 개발은 결국 건강인-환자, 그리고 지배자-피지배자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이에 거주민들이 스스로 세운 조백헌의 ‘숨겨진 동상’이 또다시 그들의 마음속에 건립되고 있었다.

 소록도 주민들은 늘 자유를 갈망했지만 전 원장들의 탄압과 배반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신과 미움만이 만연한 상태였다. 믿음과 사랑이 없는 공동체였기에 자유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에 섬을 찾은 조백헌은 섬의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결국 건강인인 타자이자 지배자였기에 소록도 주민들의 자생적인 힘으로 자유를 세우는 것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백헌은 이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며 결국 섬을 떠났으나, 운명을 같이하지 못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절대의 믿음이 생길 수 없다는 이상욱의 조언을 듣고 타자와의 교감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계속해서 위기와 충돌을 마주할 때 그것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허위를 찾고 타자와 마주하며 재구성한다. 결국 7년 후, 그는 평범한 섬사람 중 하나로, 그들과의 공동 운명체로 소록도에 다시 돌아와 해답을 찾고자 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조백헌은 결혼식 축사를 연습하며 그가 찾은 해답을 우리에게 넌지시 건넨다. 그것은 힘과 지배의 논리가 아닌 공동체의 사랑으로 세우는 ‘우리들의 천국’이다. “흙과 돌멩이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이어져야 합니다.……이제 두 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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