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진실이 범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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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실이 범람하지 않도록
  • 이소의
  • 승인 2019.03.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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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는 뉴스룸의 팩트체크는 대한민국 언론 전반의 분위기를 뒤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대중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음을 깨우쳐 준 뉴스룸의 팩트체커, 오대영 기자를 만나봤다.

오 기자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자 그는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학창시절의 생활통지표에 ‘온순하지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는 말이 여러 군데 적혀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잘 흥분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 성격 탓인지 1994년 당시 본인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등 사회의 각종 부조리 가 만연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아 분노했다고 한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이후 외고를 다니면서 언어에 관심이 생겨 영어영문학과를 지망하게 됐고 많은 대학 중에서도 ‘소수정예’라는 독특함이 끌려 서강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학교 공부보다는 외적인 일에 더 충실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2년여간 다녔던 농촌 활동을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으로 꼽기도 했다. 오 기자는 농촌 활동을 하면서 정부의 부실한 정책 탓에 고충을 토로하는 농부들을 만나게 됐고, 잘못된 사회 구조로 인해 피해받는 사회적 약자를 직접 목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학 생활 내내 신문을 꼭 옆에 끼고 다녔다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대학을 졸업한 그는 어느 기업의 인사팀에 취직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회사에 통근하면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했던 라디오 ‘시선집중’을 매일 아침 꼭 챙겨 들었다고 말했다. ‘시선집중’을 들으면서 오 기자는 언론은 사안에 대한 보도를 넘어 뉴스의 중요한 쟁점에 대한 대중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마침 공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손석희 앵커와 같은 언론인이 되고자 결심하게 된다. 결국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8살에 다시 '기자’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기자가 된 뒤 처음 쓴 기사가 ‘장애인에게 은행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기사였는데 보도가 된 뒤 많은 은행에 경사로가 생겨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팩트체크가 대한민국 언론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오 기자는 “기존의 언론은 정치권 유력 인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서 과장되거나 거짓된 얘기들을 많이 했다”며 “현재는 팩트체커들이 생겨나면서 따옴표 저널리즘을 반성하는 언론계의 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기자라는 직업적 고충에 대해서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기자가 천직인 것 같은 그에게도 힘든 점이 있다고. “사실 갈등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누군가를 지적하는 불편한 질문을 쏟아내야 한다는 점이, 10년 넘게 기자를 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 현상에 대한 정치부 기자로서의 견해를 묻자 그는 정치부 기자로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받아적기식 보도로 인해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시선이 팽배하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서강대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서강학풍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 수 있는 지적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학풍을 많이 누리고 자랑스러워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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