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고통과 싸우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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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고통과 싸우는 이들에게
  • 김현비
  • 승인 2019.04.15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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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1953년 1월 5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처음 상연됐을 때, 관객 대부분은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작품이 워낙 추상적이고 실험적이다 보니 혹평 세례도 많았다. 반면 캘리포니아 산 퀜틴 교도소의 죄수들은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치는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듯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심오한 듯하면서도 단순하고 희극적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줄거리랄 것도 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 외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 한 그루밖에 없는 단조로운 공간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누구인지, 왜 그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기다린다. 에스트라공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망각하고 블라디미르는 그에게 몇 번이나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고도의 말을 전하는 어린아이는 그가 내일 올 것이라는 말을 매일 전하며 매번 처음 전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반복적 사건이 작품 전반에 걸쳐 계속 제시되며 그들의 기다림이 하루 이틀 지속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지만, 정작 그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냥 가버리자, 목을 매자, 입으로는 계속 말하지만 그들은 기다림 이외에 어떤 행동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작품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누구나 베케트의 작품에서 비극적인 어두움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림의 고통과 싸운다. 불모를 상징하는 곳에서 그들이 무료함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 말은 행동을 유발하고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소통의 기능을 상실한 그들의 대화는 논리도, 의미도 없다. 그들은 하찮고 무의미한 것을 두고 언쟁한다. 이 점이 바로 관객들에게서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고도(Godot)는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에 베케트는 “그걸 내가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주된 시각은 신을 뜻하는 영어 ‘God’과 불어 ‘Dieu’가 합쳐진 말, 즉 신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신의 구원만을 기다리며 현생을 소비하는 맹목적인 종교를 비판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고도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 자체에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녹아있을 수도 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졸업을, 취업을, 결혼을, 또 누군가는 죽음을 기다린다. 캘리포니아 산 퀜틴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고도는 출소였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베케트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베케트가 독자들 개개인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읽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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